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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3

신라新羅 국모묘國母廟로서의 신궁神宮 新羅 國母廟로서의 神宮 Ⅰ. 문제의 제기 : 왜 다시 神宮인가? Ⅱ. 始祖 誕降之處 蘿井 Ⅲ. 신라 神宮과 주변 문화권의 神宮 Ⅳ. 결론 : 新羅 神宮은 國母廟임을 확인하며 김 태 식 始祖가 誕降한 나을奈乙에 세웠다는 신라 神宮은 主神이 누구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이 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우선 赫居世가 탄강한 나정蘿井에 대한 검토를 시도했다. 이를 우물로 간주하지만, 실상 蘿井을 우물로 볼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井자 모양으로 구획된 땅을 지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난다. 특히 蘿라는 말로 볼 때, 이곳은 덩굴식물이 우거진 곳일 수도 있었다. 神宮은 종묘宗廟의 일종이었다. 한데 종묘로서의 신궁은 신라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에도 있었으며, 고구려에도, 그리고 백제에도 있었다. 나아가 고대 .. 2023. 3. 29.
무측천武則天이 명당을 신궁으로 바꾼 이유 이세민 후궁이었다가 그 아들 고종 이치 정비가 된 무측천 혹은 측천무후則天武后 혹은 무후武后가 고종이 죽자 정권을 침탈하고는 하필 왕조 이름을 周주 라고 하고, 그 도읍을 종래의 장안을 버리고 낙양을 선택하면서, 그 낙양 궁성 남쪽에다가 기존의 명당 明堂 대신 그 자리에 국가 제1의 제사시설을 건립하면서 그 이름을 하필 신궁 神宮이라고 한 까닭을 이제는 알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중국학계 일본학게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라 신궁에 대한 이해를 발판으로 이제 神宮을 왕가의 뿌리인 엄마를 제사하는 곳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왜 여성군주 무측천에게 필요했던 곳이 神宮인지를 비로서 이해할 수 있지 않는가? (2013. 8. 18) *** 신라 신궁을 풀면 무측천 신궁을 푼다. 신궁은 국모묘.. 2020. 8. 19.
남당南堂ㆍ도당都堂ㆍ명당明堂ㆍ신궁神宮, 그리고 나정蘿井 3회에 걸쳐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2005년 8월에 송고한 같은 제목 기사는 마침 당시 박혁거세 탄강지인 경주 나정 발굴성과에 즈음해 이곳이 틀림없는 나정이요 신궁임을 확신하는 내용으로 점철한다. 내가 언젠가 말했듯이 신궁을 나만큼 아는 사람 단군조선 이래 이 지구상,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나정은 발굴결과 우물이 아닌 것으로 판명남에 따라, 신라시대 나정이 아니라는 문제제기도 이후 이은석 선생을 비롯해 몇몇에 의해 나오기는 했지만, 이는 제목에서 열거한 저런 정사당政事堂 겸 제장祭場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한다. 지금의 경주 나정은 신라시대 그 나정임에 틀림없고, 더구나 그에 들어선 제장은 신궁임은 하늘이 두쪽 나도 변함이 없다. 신궁이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로 아는 이가 많지만, 웃기는 소리다. .. 201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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