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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묘3

리키아Lycia의 바위묘 유산들 우리가 돌맹이 만지던 시절, 그러니깐 내 지인 중에서는 이한용이나 김충배나 이영덕이가 그 시절이 그리 좋다고 하면서 돌 깨고, 돌도끼로 나무 찍어 움막 짓거나 낚시바늘 찾아다니며 이것이 우리네 조상이요 하던 그 시절 저짝 지구 반대편 지금의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 남쪽 중앙 끝단 지중해를 면한 곳에는 리키아 Lycia 라 일컫는 종족 혹은 국가 시스템 비스무리한 존재가 있었던 모양이라, 그 역사적 등장은 기원전 15~14세기 무렵 룩카 혹은 루카 Lukka 라는 이름으로 그 강력한 제국 히타이트 동맹 일원이었으며,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 편에 서서 싸웠다가 훗날 기원전 546년에 패망했다 하거니와 이 친구들 주된 활동 무대로 아래를 표시한다.   그러고 보니 저짝으로 몇 번 지난 적은 있는 듯하나, .. 2024. 4. 26.
장강 유역 애묘崖墓에서 묻는 낙랑주의 애묘崖墓 벼랑에 쓴 묘라 해서 이리 표현한다. 동한시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안다. 고대 일본에 이런 무덤이 나타나 중국 강남과의 문화교류 양상으로 설명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이 애묘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조사하기는 대략 십년전쯤이다. 그땐 무슨 이유였는지 모른다. 다만 나는 한반도 문화가 동아시아 세계와 접촉한 통로로써 매양 말하는 낙랑 절대주의. 이건 미친 짓이라 본다. 죽어나사나 낙랑 타령이라 난 이걸 혁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하여 낙랑뿐이리오? 한반도 중남부 철기문화 등장과 확산은 결코 낙랑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변진한 철을 낙랑 왜에서 사간다는 어느 기록 한구절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웃기는 소리 좀 그만했음 싶다. 그것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무슨 낙랑? 石頭 같은 .. 2023. 10. 18.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2) 산악 정상 암반을 뚫은 지하궁전 두 무덤은 비슷한 시대에 만들었으며, 더구나 부부를 매장했으니 대체로 비슷한 구조였다. 간단히 말해 산 정상 암반을 가로로 뚫고 들어가 死者들이 생전에 常居한 생활공간을 그대로 흉내 내 묘실을 만든 지하궁전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이 휴전선 근처에 팠다는 땅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부는 암벽 동굴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애묘崖墓’, 즉 암반 절벽을 파고 들어가 만든 무덤의 일종으로 간주하지만, 이들 무덤이 조성되던 비슷한 시기에 주로 지금의 중국 사천성 일대에 유행하는 전형적인 崖墓와는 격을 현격히 달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후대 불교 도입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석굴石窟에 가까우니, 적절한 비교 사례가 될지 자신..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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