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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묘崖墓
벼랑에 쓴 묘라 해서 이리 표현한다.
동한시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안다.
고대 일본에 이런 무덤이 나타나 중국 강남과의 문화교류 양상으로 설명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이 애묘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조사하기는 대략 십년전쯤이다.
그땐 무슨 이유였는지 모른다.
다만 나는 한반도 문화가 동아시아 세계와 접촉한 통로로써 매양 말하는 낙랑 절대주의.
이건 미친 짓이라 본다.
죽어나사나 낙랑 타령이라 난 이걸 혁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하여 낙랑뿐이리오?
한반도 중남부 철기문화 등장과 확산은 결코 낙랑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변진한 철을 낙랑 왜에서 사간다는 어느 기록 한구절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웃기는 소리 좀 그만했음 싶다.
그것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무슨 낙랑?
石頭 같은 친구들이 石頭 역사학을 구축하고는 그것을 정답으로 강요한다.
낙랑이 지난 자리엔 또 매양 고구려를 가져다 놓는다.
신라가 고구려?
웃기는 소리 좀 하덜마라.
역사는 달에서 지구를 봐야 보이는 법이다.
애묘가 한반도에 나타나지 않는데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난 이것이 꼴도 보기 싫다. (2016. 10. 18)
***
첨부사진 애묘는 사천성 낙산대불 인근이다.
앞서 말한 한반도 철기문명 전개는 간단히 덧보탠다.
그것과 낙랑은 눈꼽만큼도 관계없고 한무제에 의한 흉노정벌이 전개한 동아시아 정국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때 동아시아 전역에 광산업이 아연 활개를 치는데 이때 한반도 남부도 요동을 친다.
낙랑? 택도 없는 소리 그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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