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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2)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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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정상 암반을 뚫은 지하궁전  

두 무덤은 비슷한 시대에 만들었으며, 더구나 부부를 매장했으니 대체로 비슷한 구조였다. 간단히 말해 산 정상 암반을 가로로 뚫고 들어가 死者들이 생전에 常居한 생활공간을 그대로 흉내 내 묘실을 만든 지하궁전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이 휴전선 근처에 팠다는 땅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부는 암벽 동굴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다. 
 

무덤방으로 통하는 길. 보다시피 암반을 파고 들어갔다. 저 안쪽에 묘실이 보인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애묘崖墓’, 즉 암반 절벽을 파고 들어가 만든 무덤의 일종으로 간주하지만, 이들 무덤이 조성되던 비슷한 시기에 주로 지금의 중국 사천성 일대에 유행하는 전형적인 崖墓와는 격을 현격히 달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후대 불교 도입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석굴石窟에 가까우니, 적절한 비교 사례가 될지 자신은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사례를 굳이 든다면 석굴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더불어 이를 요즘의 고고학에 통용하는 무덤 양식으로 보건대 옆쪽에 墓道를 마련한 ‘횡혈식橫穴式’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두 무덤은 평면도로 생각하면 흡사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 같은 맹금류, 혹은 두 팔을 양쪽으로 펼친 채 큰 大자 모양으로 쭉 뻗은 사람을 연상케 한다. 

즉, 동쪽으로 입구를 마련하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아래로 깊어지는 묘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끝나는 지점 양쪽 벽면에 단면 ∩ 모양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 공간을 만나니, 이를 사람 얼굴에 빗대어 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해서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실耳室이라 부른다. 

두 이실은 동-서 방향으로 마련한 묘도와는 직각을 이루니, 당연히 남쪽에 있는 것을 남이실南耳室이라 하고, 그 맞은편은 동이실東耳室이라 해서 구분한다. 
 

묘실 가까이로 가는 무덤길


이실을 지나면 묘실로 연결하는 통로인 용도甬道가 나오고 이를 통과하면 前室에 해당하는 中室이 나타나고 이어 後室로서 墓主를 안치하는 主室이 마침내 등장한다. 

이렇게 두 능묘는 墓道-耳室-甬道-前室-後室의 5개 구성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현지 유적 안내판에 의하면, 전체 규모는 1호묘인 劉勝墓가 全長 51.7m에 내부 가장 넓은 곳 폭이 37.5m, 가장 높은 곳이 길이 6.8m에 달하며, 竇綰墓는 全長 49.7m에 가장 넓은 곳 폭 65m에 최대 높이 7.9m에 이른다. 

내부 총면적은 유승묘가 2천700㎥ 정도로 3천㎥인 두관묘에 비해 약간 작다. 내부 폭에서 두 고분 차이가 큰 것은 뒤에서 설명하듯이 後室(主室)의 위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묘도는 흡사 거대한 땅굴이다. 검은색이 완연한 암벽을 2천여 년 전에 이처럼 거대하게 뚫은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다. 다이너마이트도 없었을 텐데, 모조리 망치와 끌로만 쪼아 팠단 말인가? 
 

정왕 유승 묘 평면도


현장 설명문에 의하면 유승묘 묘도는 총길이 20.63m에 폭 2.2~4.1m, 높이 4.5m라 한다. 거대한 터널인 셈이다. 

양쪽 벽면에는 군데군데 물이 흘러내리는데 암벽 특유의 검은색과 어우러지면서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두관묘 묘도는 유승묘보다 약간 길어 全長 28.7m에 아래쪽을 기준으로 폭 3.3~4.5m에 높이 3.5~4.95m에 이른다. 

두 묘도 모두 천장은 아치형에 가깝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낮아지는 이른바 사파형斜坡形이다. 

두관묘를 기준으로 입구 쪽과 맨 안쪽 표고 차이는 2.1m라고 한다. 묘도 입구는 발굴 당시에 둘 다 전돌과 철문으로 봉쇄했으며 묘도 내부는 土石을 섞어 채운 상태였다고 한다. 

墓道가 끝나는 지점에 그 양쪽 벽면을 곧장 파고 들어가 만든 또 다른 거대한 암벽 동굴인 耳室이 나타난다.

耳室은 서로를 마주한 상태로 각각 두 군데를 만들었다고 했으니, 두 고분 모두 발굴 결과 용도는 비슷해 한쪽에는 마차와 말을 안치한 데 견주어 그 맞은편에는 음식물을 저장하는 활용했다.

한데 그 용도에서 두 고분이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상술한다.

두 고분의 耳室은 모두 양쪽 벽면은 수직에 가깝지만, 천장은 아치 형태다. 현장에는 실제 유물을 다 수거했으니 발굴 상태를 기준으로 그 모형 전시를 하는 중이었다. (2016. 6. 12) 
 

묘실 뒤 회랑
耳室
맞은편 耳室
中室
중실 모형. 저런 식으로 시체를 놓았다.

 

***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상술한다. 고 했지만, 내가 할 이야기는 이걸로 충분하고, 또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는 이것으로써 근거가 받침되었다 생각하므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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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1)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1)

내가 만성한묘를 찾기는 2010년 10월 10일이다. 고고학계 인사 3명과 북경을 찾은 나는 그곳 북경 수도박물관에서 막바지에 이른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성립 60주년 성과 특별전을 관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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