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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3

화랑 관련 창설을 둘러싼 착란, 봄눈 녹듯 사라지는 모든 착간錯簡 《삼국사기》는 신라본기 진흥왕 37년(576) 대목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三十七年春 始奉源花" 이해 봄에 처음으로 원화를 받들었다. 누구를 원화로 삼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면 원화가 사람 이름 같다. 《해동고승전》에는 이렇다. 三十七年, 始奉原花爲仙郞 이해에 처음으로 원화를 받들어 선랑으로 삼았다. 이걸 보면 역시 원화가 사람 이름 같다. 선랑은 직책이다. 《삼국유사》엔 이런 말이 나온다. 國史 眞智王大建八年丙申 始奉花郞 恐史傳乃誤 국사에 이르기를 진지왕 대건 8년 병신년에 처음으로 화랑을 받들었다 했지만 아마도 역사 기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신라를 대표하는 제도 화랑은 실은 특정한 무리를 일컫는 우두머리, 특히 남자를 말한다. 역사에 따라 그 명칭도 변동했으니 풍월주風月主라 하기도.. 2022. 4. 5.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진지왕 시대 화랑과 원화, 그 왔다리갔다리 혼란상 - 562년 5세 풍월주 사다함 사망, 6세 풍월주 세종 취임 - 568년 원화源花 부활, 29년 만(540년 기준), 미실美室 원화 취임, 연호 대창大昌 개원 - 572년 홍제鴻濟 원년 3월, 동륜태자 보명궁 개한테 물려 사망, 미실 연루, 원화 4년 만에 폐지, - 572년 풍월주 세종 재취임. 세종, 설원랑에게 풍월주 양위(양위연대는 불명, 아마 572일듯) - 576년 진흥 사망, 진지 즉위와 더불어 화랑 분열, 호국선護國仙 문노파가 독립해 설원랑의 운상인파雲上人派와 대립 - 579년, 진지 폐위 직전 진흥왕비 사도태후가 두 파를 통합, 원화 부활, 미실 원화 재취임. 미실이 설원랑을 다시 풍월주로 임명, 곧이어 문노에게 풍월주 양위 *** 이것이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과 진지왕 시대에 걸.. 2020. 12. 5.
화랑, 그 설치와 폐지와 부활의 변주곡 1. 신라의 독특한 제도인 화랑花郞은 진흥왕 때 창설되었으니 이 화랑은 그가 이끄는 일군의 군사적 성격이 강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거니와 2. 그를 일러 화랑花郞이라 하기도 하고 풍월주風月主라고도 하며, 국선國仙이라고도 했으니, 이 차이가 무엇인지 애매했거니와 그럼에도 종교 성향으로 보건대 풍월주와 국선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도교 오두미교 천사도 계통임을 명칭으로써 안다. 3. 한데 이런 화랑은 전신이 있어 남자인 화랑에 대비되어 여성이라 그를 원화原花라 했다. 이 원화가 두 명이었는데 질투가 심해 서로 머리 끄댕이 잡고 쌈박질하다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청부 살인하고는 시멘트에 묻어버렸다. 4. 이 사건이 폭로되어 이에 열받은 진흥왕이 여자는 안되겠다 해서 남자로 하자 해서 그를 세우고는 이름하기를.. 2019.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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