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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7

오므린 파초 이파리 같은 마음 한시, 계절의 노래(321) 대신 써주다 두 수[代赠二首] 중 첫째 [당(唐)] 이상은(李商隱, 812~858) / 김영문 選譯評 누각 위에서 황혼 무렵바라보려다 그만 둠은 옥 계단 끊어진데다고리 같은 달 때문 파초는 잎 못 펴고라일락은 꽃잎 맺혀 함께 봄바람 향해서각자 수심에 젖네 楼上黄昏欲望休, 玉梯横绝月如钩. 芭蕉不展丁香结, 同向春风各自愁.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현제명, 「그 집 앞」) 사랑은 보고픈 마음이다. 포근한 봄날 저녁 파초는 새 순을 뽑아 올리고 라일락은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임 그리는 마음 참을 수 없어 ‘그 집 앞’을 서성이지만 오히려 임의 눈에 띌까 부끄러워 다시 발걸.. 2019. 4. 22.
꾀꼬리 울음이 하늘 끝 꽃을 적셔주리 한시, 계절의 노래(316) 하늘 끝[天涯] [唐] 이상은(李商隱, 812~858) / 김영문 選譯評 봄날하늘 끝에 있으니 하늘 끝에해가 또 지네 꾀꼬리 울음에눈물 있다면 가장 높은 곳 꽃을적셔주리라 春日在天涯, 天涯日又斜. 鶯啼如有淚, 爲濕最高花. 하늘 끝은 더 이상 갈 데 없는 막다른 곳이다. 그 앞은 단애(斷崖), 즉 절벽이다. 그곳으로 봄날 태양이 진다. 나아갈 곳이 없는 자리다. 그곳은 부여 낙화암이며, 굴원의 멱라수이며, 「와호장룡」의 무당산 절벽이다. 시인 이상은에게는 곧 닥쳐올 당나라 망국의 자리이자 인생의 끝자리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봄날 황혼녘 꾀꼬리가 운다. 꾀꼬리는 눈물도 없이 가슴을 찢으며 운다. 백석의 명편 「흰 바람벽이 있어」도 이 시와 같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 2019. 4. 12.
만나기 어려웠기에 헤어지기도 어려워 당말唐末 문단에 유미주의라는 열풍을 일으킨 이상은李商隱. 이 유미주의 열풍은 어쩌면 남북조시대, 특히 남조 육조로의 회귀이기도 했다. 이 친구 말은 빌빌 꼬아 알아먹기가 에렵기 짝이 없는데...시 제목도 무제(無題)라 한 일이 많았으니, 그래도 다음 시는 알아먹기가 개중 쉽고 애잔하다. 무제(無題) 만나기 어려웠기에 헤어지기도 어려워 동풍이 메가리 없어 온갖꽃 떨어지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 끝나고 촛불은 재되어야 비로소 촛농 마르네 새벽 거울보다 수심에 머리 희어지고 밤엔 읊조리다 달빛 찬 줄 알았네 봉래산 예서 가는 길 멀지 않으니 파랑새야 살짝 가서 찾아보고 오렴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乾. 曉鏡但愁雲鬢改, 夜吟應覺月光寒. 蓬山此去無多路, 青鳥殷勤為探看. 몇몇.. 2019. 2. 2.
바다 같은 푸른하늘에 밤마다 띄우는 마음 한시, 계절의 노래(257) 항아(嫦娥) [唐] 이상은(李商隱) / 김영문 選譯評 운모 병풍에촛불 그림자 깊어지고 은하수 점점 떨어져샛별도 침침하네 항아는 영약 훔친 걸틀림없이 후회하리라 바다 같은 푸른 하늘에밤마다 마음 띄우니 雲母屛風燭影深, 長河漸落曉星沉. 嫦娥應悔偷靈藥, 碧海靑天夜夜心. 운모로 만든 병풍이라 촛불 빛이 찬란하게 반사될 터이다. 하지만 촛불 그림자가 어둑어둑 깊어지니 촛불이 다 타서 꺼져가는 시간이다. 중천에 떠 있던 은하수도 기울고 샛별도 침침하게 빛을 잃어간다. 불면의 밤을 지새운 작중 화자는 쓸쓸하고 고독하게 새벽을 맞고 있다. 고운임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고난에 지쳐 잠조차 잃은 것인가? 꺼져가는 촛불, 기울어가는 은하수, 침침한 샛별이 작중 화자의 심정을 적막하게.. 2019. 1. 29.
돌무더기여, 방해하지 말지어다 한시, 계절의 노래(170) 어지러운 돌무더기(亂石) 唐 이상은 / 김영문 選譯評 범과 용이 웅크린 듯종횡으로 뒤엉켜서 별빛 점차 스러지니빗방울이 맺히네 동서로 오가는 길방해하지 말기를 술고래 완적이통곡하다 죽을 테니 虎踞龍蹲縱復橫, 星光漸減雨痕生. 不須幷礙東西路, 哭殺廚頭阮步兵. 이상은 시는 대부분 난해하다. 어휘 구사가 생경하고 느닷없다. 하지만 특이하고 기발한 특징을 보인다. 그의 시를 마주하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수수께끼를 풀 듯 시에 집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느라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래도 이 시는 이상은의 시 중에서 평이한 편에 속한다. 기암괴석이 마구 엉긴 모습을 범과 용이 웅크린 것으로 비유한 기구(起句)는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럼 승구(承句) “별빛 점차.. 2018. 9. 13.
붉은 노을 마주하며 황혼을 생각한다 한시, 계절의 노래(101)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당 이상은(李商隱) / 김영문 選譯評 저녁 무렵 마음이울적하여 수레 몰아 낙유원에올라가네 석양은 무한히아름다우나 다만 황혼이가까워오네 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낙유원은 중국 당나라 장안성(長安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던 유명 관광지다. 한나라 때 조성되었고 그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아 도성 남녀가 즐겨 찾는 산보 코스였다. 우리 서울로 치면 딱 남산에 해당한다. 만당(晩唐) 대표 시인 이상은은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를 타고 이 유서 깊은 전망대에 올랐다. 지는 해는 마지막 햇살로 서편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였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낙유원에 올랐지만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오히려 황혼의 비애에 젖는다.. 2018.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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