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16)
하늘 끝[天涯]
[唐] 이상은(李商隱, 812~858) / 김영문 選譯評
봄날
하늘 끝에 있으니
하늘 끝에
해가 또 지네
꾀꼬리 울음에
눈물 있다면
가장 높은 곳 꽃을
적셔주리라
春日在天涯, 天涯日又斜. 鶯啼如有淚, 爲濕最高花.
하늘 끝은 더 이상 갈 데 없는 막다른 곳이다. 그 앞은 단애(斷崖), 즉 절벽이다. 그곳으로 봄날 태양이 진다. 나아갈 곳이 없는 자리다. 그곳은 부여 낙화암이며, 굴원의 멱라수이며, 「와호장룡」의 무당산 절벽이다. 시인 이상은에게는 곧 닥쳐올 당나라 망국의 자리이자 인생의 끝자리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봄날 황혼녘 꾀꼬리가 운다. 꾀꼬리는 눈물도 없이 가슴을 찢으며 운다.
백석의 명편 「흰 바람벽이 있어」도 이 시와 같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이 세상에는 하늘이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생래적으로 높은 이상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들은 늘 막다른 변방으로 밀려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산다. 가장 높은 가지에 핀 꽃이 그들이다. 가장 높은 가지에 핀 꽃이 가장 먼저 시들게 마련이다. 그들의 외로움에 공명하는 건 눈물도 메말라버린 봄날 황혼녘 꾀꼬리뿐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조니 도렐리(Johnny Dorelli)의 「눈물 속에 피는 꽃(L'immensita)」이 귓전을 스친다. 눈물도 없는 꾀꼬리 울음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적셔줄 촉촉하고 따뜻한 눈물을 꿈꾸면서......
“이오 손 시꾸로 께, 뻬르 온니 곳챠Io son sicuro che, per ogni goccia/ 뻬르 온니 곳챠 께 까드라 운 누오보 휘오레 나쉐라per ogni goccia che cadra un nuovo fiore nascera(나는 믿어요 지금 흘러내리는 눈물/ 눈물마다 새로운 꽃이 피어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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