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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3

조선후기의 선물과 부조금 이미 많은 분이 밝힌 것으로 아는데 조선후기에는 사대부 사이에 선물증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이게 그냥 선물 정도가 아니라 집안 살림이 이 선물로 돌아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누구로부터 뭐를 받고 하는 것을 꼼꼼이 적어두고 또 그 반대급부로 이쪽도 그쪽에 뭔가 상응하는 선물을 보내는 것이다. 이 선물이 가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아예 이를 선물경제라고 이름 붙인 연구자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 뭔가와 많이 닮지 않았는가? 바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부조금이다. 경조사가 있을 때 찾아가 부조금을 내고 그 부조금 내역을 꼼꼼이 적어 두었다가 반대로 가서 상응한 금액을 내는 것. 우리나라 부조금을 유심히 보면 경조사를 축하한다는 정도를 넘어 아예 서로 돌아가며 계를 타는 모양에 더 가까운 것 .. 2024. 11. 4.
며느리한테 증여하는 이유 아래에서 재산을 몰아주기 위해 별급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힌 데 대해 며느리에게 증여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시는 듯하다. 며느리에게 별급하는 것이 아들에게 별급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별다른 까닭도 없이 별급하면 다른 아들들이 불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며느리에게 시집왔는데 예쁘더라,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거나, 손자를 낳아다거나 여러 빌미가 있었다. 다만 그 재산의 처분을 제한하여 실제적으로 장자 상속이 되도록 하고 있다. 9대조 기종상奇宗相이 1754년(영조30) 8월 20일에 큰아들 기태온奇泰溫의 처인 큰며느리 부안 김씨에게 용모가 단정하고 종갓집 살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독다리들[석교평, 농사農舍와 감농정鑑農亭이 있던 일대] 논 6마지기를 별급하였다.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 2020. 9. 20.
조선시대 재산상속의 비법 《경국대전》이 표방하는 조선의 상속법은 자녀균분상속이다. 법대로 하면 종법질서가 어그러질 수 있었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 여럿인데, 가장 애용한 방법이 별급別給이다. 요샛말로 하면 증여다. 별급으로 먼저 이쁜 자식에게 몰아주고 남은 재산만 균분상속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은 증여세가 없었다. 1622년(광해군14) 13대조 기처겸(奇處謙)이 장자 기진탁(奇震鐸)의 처(妻)인 나무춘(羅茂春, 1580~1619)의 딸 나씨에게 승중(承重) 총부(冢婦)로서 용모가 단아하여 오늘 처음으로 보고 감격을 금치 못하여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노비 3구(口)와 전답 17마지기를 별급해 주었다. 또 1624년(인조2)에는 장자 기진탁이 18살 어린나이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기쁨을 이길 수 없다는 이유로 노비..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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