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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3

학병 소위 임관은 합법적이었을까? 학병으로 끌려간 양반들이 예비사관으로 있다가 1945년 8월 경에 원래 정식 소위 임관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시기 공통적 증언의 하나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9월 경에 일본군이 해산 하면서 소위 계급장을 주고 해산시켰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9月2日:日本政府が戦艦ミズーリで降伏文書調印。GHQ指令第一号(陸海軍解体、軍需生産の全面停止等)が出る。 라 해서 1945년 9월 2일 일본 정부가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과 동시에 연합군최고사령부 (GHQ) 명령 제1호로 일본군 육해군 해체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중국 방면 등지에서 일본군 해산과 함께 학병들에게 달아주었다는 소위 계급장이 합법적인 소위는 맞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 2023. 6. 12.
일제시대 교육과정 착시의 이유 앞에서 쓴 것처럼 일제시대 학력을 우리가 볼 때, 고등보통 (고보)를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인지하는 일이 많다. 이때문에 일제시대 고보, 전문학교 졸업생들을 고등하교, 대학 졸업생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해방이후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그 하위교육기관은 고등학교 (혹은 중학)으로 재편제하면서 나오는 착각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학력을 보면, 보통학교--양정고보--보성전문--메이지대 전문부 (법학졸업) 손기정 선생 이런 학력처럼, 양정고보, 보성전문을 각각 고등학교, 대학으로 인지하면 보통학교와 고보 사이에 중학과정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전문학교를 졸업해서는 절대로 "대졸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공부한 사람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30년대 이후.. 2023. 3. 26.
<3.1절 80주년의 사건> (5) "처음 밝힙니다. 나는 일본군 소위였어요" 말쑥한 밤색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 인터뷰를 의식해서라고도 하겠지만, 천상 할배요 천상 영감인 이 양반은 적어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생평을 이렇게 살았을 사람 같았다. 흐터러진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길이 없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아했다. 곱게 늙는다는 말, 이런 사람한테 쓰는 갑다 했다. 말투 역시 차림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천상 마음씨 좋은 문방구 할배의 그것이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시종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래 신선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했다. 목청은 높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했다. 만나 보니 현승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판에 박힌 인사를 나누고는 이력 조회에 들어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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