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해체신서4 해체신서: 범례의 마지막 부분 앞에서 쓴 해체신서 마지막 저자의 범례 끝부분이다. 필자는 우리 글 중에도 연려실기술의 서문이 정말 명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해체신서의 범례도 잘쓴 글이라고 본다. 범례 전문을 읽어보면해체신서 저자의 진심이 전해진다고 보아 여기 그 끝자락을 남겨둔다. 순한문이고 구두점이 찍혀 있어 독해하는 데 많이 어렵지는 않다. 글 중에 "개면목改面目"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해체신서 저자에 의하면, 의학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전통의학과는 다른 사고,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이 책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다른 것은 할줄 모르고 오직 의업이나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일생을 걸었기 때문에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고 담담하게 쓰고 있다. 2024. 9. 9. 조선은 학자들이 현실 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소위 자칭 학자들이 현실참여를 안해 망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학자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어느 쪽으로 봐도 함량미달인 지식인을 양산했던 것도 17세기 이후 조선이라는 사회를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게 한데 크게 공헌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해부번역서 해체신서解体新書를 쓴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는 그 책에서 이렇게 외쳤다. "이 책(해체신서)을 읽는 사람은 마땅히 그 면목을 고쳐야 한다. 옛 관습에 빠져 내장과 뼈에 대한 한의학 설과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다만 의심할 뿐 망설였으니...결국 분명하게 알 수 없었기에 끝내는 지리멸렬하게 되었다....그런 까닭에 진실로 그 면목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오호라! 사람들 중에는 유.. 2024. 9. 9. 개항 당시 조선의 상황과 일본의 그것, 그리고 난학蘭學 나라 밖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백 명 만 있었어도 아마 조선은 식민지화를 면하고 자주적 근대화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1876년 개항 이후 망국까지 34년. 길다면 길다고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기간이긴 한데, 나라밖 세상을 전혀 모르고 개항한 나라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겠다. 왜 한국은 실패하고 일본은 성공하였는가. 일본은 서구와 비슷한 역사를 걸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도 옛날에는 횡행했지만, 결국은 조선후기에는 없던 에도시대 난학의 존재가 양자의 차이를 결정했다고 본다. 해방 후 70년간 한국이 걸어온 경로와 성취를 본다면, 아마 개항 이후 한국이 메이지시대 일본처럼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면, 전혀 다른 역사가 전개되었으.. 2023. 4. 15. 다산의 시대, 이미 조선은 학문수준에서 동아시아 꼴찌였다 다산이 활동하던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 이미 조선은 학문수준에서 동아시아 꼴찌였다. 조선선비들이 죽도록 한 거라면 책읽는 거라 다산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래도 유교경전 하나는 수준있게 이해하지 않았냐 싶겠지만, 천만에. 다산의 시대. 조선은 학문수준에서 이미 동아시아 꼴찌였다. 다산 자체가 부정되어야 18-19세기의 한국의 상황이 보인다. 학문수준에서 이미 다른 나라에 내세울 수준이 안 되는 인물을 굉장한 대학자로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으려 드니 18-19세기 조선의 상황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다. 2023. 1. 15.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