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화랑14 검군(劍君) 진평왕 시대 신라인으로 사량궁 사인으로 있으면, 다른 사인들이 관청 곡식을 몰래 빼돌리는 일에 가담하지 않아 그들에게 독살됐다. 근랑(近郞)이라는 풍월주를 따라 수양하면서 의로운 것이 아니면 사사롭게 취할 수 없다는 신념을 익혀 이를 실천에 옮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검군 열전 :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건복(建福) 44년 정해(진평왕 49: 627)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여러 농작물을 말려 죽였으므로 다음 해의 봄으로부터 여름까지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메웠다. 이때 궁중의 여러 사인(舍人)들이 함께 모의하여 창예창(唱倉)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이 홀로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이 말하기를 “.. 2018. 3. 15. 전밀(轉密) 문노(文努)의 유풍을 따르는 신라 화랑 집단에 소속된 불교 승려라는 사실만 확인된다. 활동시기는 그와 교유한 김흠운(金歆運)이 태종무열왕 2년(655)에 사망한 시점을 고려할 때 선덕~진덕~태종무열왕 무렵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김흠운 : 김흠운(金歆運)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이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의 아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들이 아무개는 전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고 하니 동문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2018. 3. 15.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