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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60

[마왕퇴와 그 이웃-33] 중국의 비단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마도 비단 아닐까. 사실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 대한 평을 다는 일이 필자로서는 조심스럽다. 비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여기서 매미 허물 같은 얇은 고도의 비단 옷이 나왔다던가, 상등품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던가, 글을 썼다던가, 이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은 필자가 내릴 수는 없다. 아마 김단장께서 좋은 글을 써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도 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지 않다. 인간의 사육한 동물 하면 대개 소, 말, 돼지 등을 연상하기 쉽지만, 곤충도 사육한 동물에 포함된다.예를 들어 그 대표적 사육곤충 하면 누에와 벌이 있다. 이 중 누에는 야생종인 누에 나방을 키워 여기서 비단실을..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2] 만병통치약 마왕퇴에 대해 쓴 책들을 보면 당시 중국 대중은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몰려들어 쑥밭을 만들어 놓고 떠나가는 존재로 나온다. 이 당시가 문화혁명 절정기였던 탓이 가장 크겠다.  마왕퇴 무덤은 가장 안 쪽에 목곽이 놓이고 그 밖에 숯을 채우고다시 그 바깥쪽을 고령토로 다져 밀봉한 다음 위에 흙을 다져 쌓아 올려 만들었다. 이 무덤을 발굴했을 때 목곽 주변에 쌓아 둔 막대한 양의 숯이 나왔는데, 너무 많은 양이 나와 이 숯은 박물관 창고에도 넣지 못하고 마당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쌓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숯을 슬금슬금 사람들이 광주리를 들고와 퍼가는 것이 아닌가!왜 그런지 이유를 들어보니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이 숯이 사람들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숯을 가지고.. 2025. 3. 5.
[마왕퇴와 그 이웃-31]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마왕퇴는 복잡한 역사적 사실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측면이 뒤얽혀 있다. 여산 진면목은 산 밖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마왕퇴를 발굴하던 그 시점 자체에 대해서는 문화혁명을 빼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성격으로 비화할 확률이 높았다. 그냥 문화유적과 유물은 그렇게만 봐 주면 될 것을 이에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워 이 무덤은 반동영주계급의 소산이요, 마왕퇴 미라는 호의호식한 여편네 정도로 폄하되어 원래 같으면 홍위병 습격으로 몽땅 태워질 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왕퇴 발굴이 그렇게 막장으로 가지 않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과를 내며 종지부를 찍은 것은어쨌건 그 미친 세상의 와중에도 제대로.. 2025. 3. 5.
대 몽골전 꺾기도 사망하신 남송 부부 미라 《探索·发现》 20230114 茶园山南宋古墓之谜(上)https://tv.cctv.com/2023/01/14/VIDEz3orXS4BUJSIzzspQ4V0230114.shtml 《探索·发现》 20230114 茶园山南宋古墓之谜(上)本期节目主要内容:1986年8月1日,福州火车站附近茶园山工地施工现场,一座古墓横空出世,一男一女两具保存完好的古尸就藏匿在这座小小的山包里面。考古表明这是一座南宋时代的墓葬。七tv.cctv.com    1986년 8월, 복건성 복주福州 다원산 초등학교茶园山小学에서 운동장을 건설하던 중 700여 년 전 남송南宋 시대 부부를 함께 묻은 무덤 하나가 우연히 발견된다. 부부는 하나의 봉분 아래 각각 관을 달리해서 안치됐는데 나중에 밝혀졌지만 남자 쪽 관이 유난히 무거웠다.이를 조사하던 사람들이 살짝 치켜든..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30] 남방 초나라의 자연 환경 앞서 서한시대 군현의 인구밀도에 대한 지도를 위와 같이 포스팅 한 바 있거니와 이 지도에서 눈에 띄는 바는 역시 전국시대 초나라가 위치한 남방의 인구밀도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당시 남방의 상황은 어떠했던 것일까? 이 정황을 짐작케 해주는 역사 기록이 있다. 당시 양자강 유역은 거대한 사파리 셀렝게티 공원이나 다름 없었다. 양자강 중류에는 운중대택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는 당시 남방 귀족들이 자주 사냥을 나갔던 모양으로 그 모습이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墨子·公輸》: 「楚나라에는 雲夢大澤이 있으니 犀, 兕, 麋, 鹿이 가득하다」《戰國策·楚策一》: 「楚王이 雲夢大澤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말 네 필을 묶은 수레 千乘에 깃발은 하늘을 덮었고 들불이 일어나 구름무지개 같은데 兕와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9]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최근 포스팅하는 김 단장님 글을 보니 이전에 게시한 아래 글은 조금 숙고가 필요해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겸 약간 고쳐 다시 포스팅한다 [필자 주].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들었다. 마왕퇴 한묘도 베리에이션의 측면에서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야 한대 목곽묘에 당.. 2025.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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