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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15

[마왕퇴와 그 이웃 - 6] 위만의 무덤은? 마왕퇴 무덤은 장사왕의 승상이자 자신의 봉국을 가지고 있던 전한의 열후列侯의 무덤이다.구체적으로는 열후인 轪侯 리창 가족 일가 공동묘지다. 이 무덤은 크기에다가 부장 유물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래도 그는 장사왕의 승상이었고, 대후로서 왕은 아니었다. 제후국 안의 작은 제후국 왕이었다. 전한 때 만든 무덤 중 왕의 무덤으로는 남월왕 무덤이 있고, 또 중산국왕 무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김 단장께서 여러 번 자세히 쓰신 바 있으므로 더 쓰지 않겠다. 마왕퇴와 남월왕 묘를 보면, 역시 이전 김 단장 지적대로 동시기 조선의 왕인 위만 일가의 왕릉이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 크기여야 하며, 나아가 그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지 대강 추정이 가능하다. 위만의 조선은 사기를 보면 항상 조타의 남월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나..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 5] 중국의 핵 방공호 1969년 발발한 중소국경분쟁 여파로 소련이 핵전쟁까지 들고 나오자 당장 급한 쪽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핵은 있었지만 투하 수단이 마땅치 않았고 소련은 아직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한 초강대국으로 양국간 핵전쟁이 발발하면 그 결과는 뻔했기 때문이다. 마왕퇴에 대해 쓴 책을 보면 항상 가장 앞에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는 마왕퇴를 발견한 계기가 된 방공호를 파던 이야기.두 번째는 임표의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개 이를 건너 뛰고 이해하게 되는데 사실 이 두 사건은 마왕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인 문화혁명이나 미중 데탕트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이 소련의 핵공격에 대한 위협이 1969년 나오자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핵방..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 4] 중소국경분쟁 마왕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건이 있다. 중소 국경 분쟁이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이미 이 사건은 잘 모르는 시대에 접어들어 조금 설명해 둔다. 이 사건의 이해가 마왕퇴를 둘러싼 전반적 일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까닭이다. 마왕퇴는 문화사적 대발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 정치적 사건이기도 했다. 알다시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는 소련이다. 소련은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발발하고 최후에 공산당이 승리할 때까지도 중국의 혁명역량을 믿지 않았다. 중국은 낙후한 농업국가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소련의 입장에서는 중국혁명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변종에 가까왔다.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일대를 풍미했던 마오이즘과 ..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 3] 초나라의 땅, 장사 앞에 김 단장께서 올린 지도로 장사국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얻었지만 ( 한나라 초기 제후국들과 장사국 ) 이 지도도 한 번 봐주기 바란다. 전한의 판도를 그린 지도로 짙게 표시된 지역일수록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다. 이 지도를 보면 전한 대까지도 초나라 땅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바로 이것이 거대한 판도를 다스린 것으로 알려진 초나라가 중원국가에 압도적이지 못했던 이유이다. 중원국가들은 영토도 작고 약소국 같지만 인구수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마왕퇴 이야기 배경이 되는 장사 지역은 더더욱 인구가 희소하다. 이 지도를 보면 장사 지역은 한반도 낙랑과 현토보다도 인구밀도가 낮다. 마왕퇴의 화려한 무덤은 바로 이처럼 인구가 희소한 초나라 땅에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에 만든 한묘漢墓는.. 2025. 2. 23.
한나라 초기 제후국들과 장사국 한漢 왕조가 들어선 직후, 기원전 195년 그 황제 직할령과 제후국, 그리고 그 산하들에 설치된 군들을 표시한 것이다. 출처는 周振鹤 《西汉政区地理》.황색은 기원전 195년 전한 초기 한 고조 12년 직할 통치한 구역이다. 이해에 유방은 제후국과 한군汉郡을 설치했다.이때 총 10개 왕국을 분봉했는데, 그 중 동성同姓은 9개, 이성異姓은 1개(장사국长沙国)였다.천자 직할구는 경사 내사京师内史를 포함하여 총 15개 군郡이 있었다. 이때는 이미 그 이전에 분봉한 이성제후들을 각종 이유를 달아 처단한 뒤였다. 그런 혼란에서도 이성제후 중에서는 유일하게 장사국만 살아남은 점이 독특하다. 저 제후국 중에서도 동북방 燕國은 그 범위에 논란이 적지 않다. 압록강 건너 한반도까지 넘어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글쎄다. .. 2025. 2. 22.
[마왕퇴와 그 이웃-2] 그리고 楚-漢의 시대 (2) 마왕퇴는 전한시대 무덤이다. 정확히는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고 한나라를 건국했을 무렵그를 따라다니던 공신 중 별 볼일 없던 리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대단한 건국 공신들도 유방과 여후에 의해 모가지가 팍팍 날아가던 무렵비록 한나라의 외곽이기는 해도 장사 지역에 자기 군국도 하나 받아 열후가 되고 그 자손까지 봉작이 이어져 거의 백년 가까이 유지한 집안 일가 무덤이다.   마왕퇴라고 하지만 무덤 하나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모두 세 개 무덤을 총칭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 무덤은 조사한 순서에 따라 각각 1호, 2호, 3호 무덤이라 부른다. 이 무덤은 발견은 1971년 12월에 있었지만 실제 발굴이 진행된 것은 1972년으로 (1호 무덤)2호와 3호 무덤은 1973, 1974년에 각각 시행되.. 2025.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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