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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8

도와즈가타리, 천황 형제랑 쓰리썸까지 한 가마쿠라 천황가 어느 후궁의 자서전 "또 상황上皇의 소매 향기가 내 소매에 남아있고 거기에 보태어 아리아케노쓰키(땡중-인용자주)의 소매 향기가 다시 겹쳐지는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 (고후카쿠사인 니조 後深草院二条 지음, 김선화 옮김 《도와즈가타리》(학고방, 2014) 151쪽) 편의상 땡중이라 했지만, 저 땡중은 실은 문제의 상황한테는 어릴 적 친구라, 저 후궁을 그 땡중한테 가라 등 떠밀은 이가 다름 아닌 상황이다. 이 땡중과의 사이에서 후궁은 자식을 둔다. 퇴직 천황의 후궁으로서 다른 뭇 남자를 헤엄치다 한편으론 그런 행각이 들키까 두려우면서도 미안해하다 마침내 들켰으니, 그런 후궁한테 퇴물 천황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잠자리를 네 엄마한테 배웠느니라. 너가 뱃속에 있을 때도 나는 참지 못했느니라. 그래서 너가.. 2023. 8. 20.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Establishing Joseon Capital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漕運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1394년(태조 3) 8월, 태조가 한양을 왕도로 삼고 한 말입니다. 이내 종묘·사직과 궁궐이 들어서니 비로소 임금의 교화敎化와 정령政令이 나가며,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의 서울 한양으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었다 다시 흩어지고, 육로를 따라 갖가지 물품을 실은 말과 수레, 물길을 따라서는 배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은 조선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국·일본·만주·유구에서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고, 또 그곳으로 사신들을 보내는 곳 역시 한양이었습니다. 외국의 물품이 한양으로 들어왔고, 조선의 물품이 한양에.. 2023. 8. 19.
한양의 조선시대 판문板門 Plank Door from Joseon period 한양의 판문 조선시대 주택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서울 종로 청진지구 발굴조사는 조선의 폼페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잘 남아 있었죠. 운종가 시전 뒤편 주택가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을 통해 당시 한양 사람들의 실생활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판문板門도 청진동 도심 재개발부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판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0년 넘게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이 판문은 발굴 당시 앞면이 심하게 불탄 채 집 안쪽으로 넘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16세기 어느 날 청진동 주택가에서 전란이나 사고로 큰 화재가 일어나 불에 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개의 두꺼운 소나무 판을 잇대어 만든 이 판문은 대문 옆에 나란히 세운 보조문으로.. 2023. 8. 19.
호신불은 과연 존재할까? by 김태형 꽤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었던 문제다. 출근해서 메일을 보니 해외소재 불교문화재 소개 동영상이 있기에 살펴보다가 문제제기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터 등지에서 발견되는 소형 금동불상을 대부분 호신불, 호지불이라 부르면서 가지고 다니면서 자시를 보호해주는 부적처럼 지니고 있던 불상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설명들을 하고 있다. 혹은 석탑에서 발견되면 탑의 사리장엄구로 제작해서 넣었다고도 한다.(이 사례는 황복사 삼층석탑의 예가 있다) 과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들 설명은 정말 어느 정도 정확도나 신빙성이 있는 걸까? 참 이상한 건 호신불이라면서 불상의 전면은 멀쩡한데 뒷면은 대부분....다 아시는 애기지만 좀 그렇다. 불상의 몸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좌 부분도 뒷면은 매단히 엉성하게 뭔가 하다만듯 처리되.. 2023. 8. 18.
“그저 찬동의 물개 박수만 보낼 뿐” 양강楊江, 그 남은 것들 아래는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양평군 주최 “양평 양강의 문화자원과 문화콘텐츠” 학술대회(2023. 8. 18, 양평생활문화센터) 발표 윤찬모尹讚模, '楊江의 역사 문화자원 발굴과 활용- 朝鮮 孝宗妃 仁宣王后 國葬 사례를 중심으로 -'에 대한 토론문이다. 楊江, 그 남은 것들 김태식 연합뉴스 선임기자 이번 발표문을 접하고선 나는 새삼스레 내가 이 글이 논급한 한강변에 얽힌 추억들을 떠올렸으며, 그러는 와중에 틈만 나면 수종사 올라 물끄러미 두물머리 바라보던 기억과, 그 두물머리에서 좋아 죽어라 하며 싱글벙글하며 지인들과 옛날 핫도그 하나 먹던 추억이 오버랩하는 유쾌 찬란함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경험을 했다. 뭐랄까 그 기분은? 그 옛날 주말의 명화 시작 무렵에 롤 필름 흘러가는 그런 장면을 마주하는 느.. 2023. 8. 17.
900년 전 오늘 고려에서는 딱 900년 전 오늘, 그러니까 1123년 8월 15일(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에서 찾아봤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계유 왕이 친히 건덕전乾德殿에서 5일 동안 소재도량消灾道場을 열었다. - 권15, 세가15, 인종 원년 7월 22일(음)[양 8.15.] 그때에도 뭔가 재변災變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이때는 임금이 직접 뭔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여간 그랬다고 한다. *** Editor's Note *** 소재도량消灾道場이란 재앙을 물리치려는 불교 푸닥거리라, 애초 불교엔 이런 관념이 없다가 동아시아에 상륙하며 기존 그 지역 전통을 흡수하면서 생겨났으니 본래는 도교 의식이었다. 뭐 불교학 하는 사람들이야 가오 때문인지 몰라도 밀교 운위하더라만, 도교를 모르니 이런 헛소리가 넘쳐난다. 그렇다..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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