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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경과 식생활의 역사212

신석기시대 농경과 휴경 신석기시대 곡물로 평양에서는 조, 수수, 기장, 쌀 등 다양한 곡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다양한 곡물은 콩, 조, 기장, 쌀 모두 다른 밭에서 키워 냈을까? 아마 윤작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나라 농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휴경의 문제로 휴경을 하지 않으면 매년 수확이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 극복을 위해서 어떻게 했느냐 우리나라 조선시대 세종 시기에는 소위 2년 3작의 윤작법이 황해도 이북에서 시행되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첫해 봄에는 조나 기장을 심는다. 이 블로그에 쓴 것 같지만 조나 기장은 수확이 빨라 첫 번째 수확이 끝나면 바로 보리를 심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보리 수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그 땅에 콩을 심고 2년차 하반기는 땅을 놀렸다는 것이다. 여기.. 2024. 7. 25.
손바닥 만한 땅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던 시대 시대가 흘러 조선후기쯤 되면 손바닥 만한 땅이라도 비료를 갈아 넣고 때려 부어 매년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두는 일이 가능했겠지만 우리나라는 조선 전기까지도 휴한 농경이 극복이 안 되고 있었다.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의 반드시 일정기간마다 농사를 쉬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건 무슨 뜻이냐. 손바닥 만한 땅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 땅 부쳐서 먹고 살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농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쉬는 땅과 농사짓는 땅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하니 농사의 기본 단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휴한농경을 할 수 없는 소토지 소유자는 어차피 그 땅 가지고 있어봐야 먹고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휴한 농법이 토대로 되어 있는 사회는 장원의 출현이 필연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는 무슨 소리냐 하면, .. 2024. 7. 25.
농사와 환경, 자연이란 말 가능키나 한가? 농사는 던져둬서는 실패한다는 이야기를 김단장께서 하신 바, 사실, 농사를 그냥 던져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과, 치산치수는 안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곧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은 서로 통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사람 손을 안 탄 것이 곧 자연이고 우리네 농촌은 바로 그런 사람 손 안 탄 자연의 모습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농촌은 인공의 산물이다. 신석기 시대 이래 농촌은 지금까지 사람 손을 안 탄 적이 없다. 우리가 보는 시골 뒷산. 전부 사람 손이 다 탄 것이다. 자연처럼 보이는 논과 밭. 전부 인공이다. 우리가 어릴 적 보았던 시골은 인공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치산 치수 하지 않으면 그건 자연이 아니고 야만이다. 사람이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2024. 7. 24.
이순신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를 다시 보며 일전에 소개한 적 있는 이순신의 북방 전투를 그린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다. 이 수책거적도를 다시 보면, 이 그림 주인공은 여진족도, 이를 방어하는 조선군도 아니고바로 뒤편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조선의 농부다. 성채 바깥에 펼쳐진 밭인지 논인지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병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둔전일 수도 있겠지만 병사가 이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구한말에는 심지어는 이런 군대의 보호없이도 농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청의 봉금封禁 지역으로 몰래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농부는 땅을 갈아 먹고 살 수 있다면 어디든 간다. 고려시대 후기 오면서 이 땅에서 마침내 혼합농경이 안정적으로 경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북방 사민의 성공인데, 여기서 병사의 전투와 정치적 포석은사실 이 북.. 2024. 7. 19.
신라통일 이후 북벌은 혼합농경 북상의 역사 앞에서 우리나라 잡곡과 도작은 기원을 달리하여 요서에서 남만주를 거쳐 들어온 잡곡과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들어온 도작이 만나서 도작과 잡곡이 어우러진 혼합농경이 성립된 곳은 아마도 평양과 황해도 일대 서북지역일 것이라 하였다. 이 혼합농경이 더욱 남하하여 이루어진 판도가 세형동검문화와 얼추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한다. 따지고 보면 대략 고려의 천리장성 정도가 바로 혼합농경의 북방경계였을 것이라 보는데, 윤관정벌과 공민왕의 북벌, 세종대의 북벌 등은 모두 바로 이러한 혼합농경의 북벌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윤관북벌 이후 우리나라 함경도 지역의 식민은 농업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 아래 지도를 보면 알수 있다. 삼국시대-고분시대 도작이 도달할 수 있는 위도는 북위 40도.. 2024. 7. 19.
신석기시대 농경 어찌 봐야 하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조, 기장을 비롯한 쌀, 보리, 밀, 콩, 팥 등의 탄화 곡물이 다수 확인되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조, 기장, 쌀, 보리, 밀, 콩, 팥을 키우고 있었다면, 아니 여기서 쌀과 보리는 빼도 좋다. 조, 기장, 밀, 콩, 팥만이라도 한 번 동시에 키워보기를-. 산에 들에 멧돼지 꿩 잡고 도토리 주우러 다닐 시간이 나나 안나나. 저렇게 다양한 곡물을 동시에 재배하고 있었다면 그게 어떻게 초보적 농경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밭에다 씨만 뿌려 놓는다고 가을 되면 그게 다 익어 추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런 농사는 없다. 뭔가 쌀 농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제대..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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