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국사와 동북아 민족의 기원117 김득신 "파적도"와 쇄미록 평소 무심하게 보아 넘긴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 이 파적도는 쇄미록을 읽고 나면 그 일기를 보고 그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진다. 먼저 고양이-. 오희문 일가는 고양이를 원래 길렀다. 그런데 난리 중에 닭을 키우게 되면서 고양이를 아는 절에 맡긴다. 닭은 키우면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듯 하지만 자주 없어진다. 주변 야생동물들이 종종 잡아 먹어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양이를 괜히 치워버렸다 싶을 것이 이번에는 쥐 때문에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곡식이고 생선이고 간에 쥐가 다 먹어버리니오희문은 쥐 때문에 학을 떼고 결국 절로 가서 고양이를 다시 품에 안고 데려온다. 문제는 그 고양이도 얼마 안 있다가 사라지는 듯. 오희문은 아마도 호랑이가 물고 가버렸나보다, 라고 체념한다. 위 장.. 2025. 8. 24. 조선의 말: 선입견과 실제 모습 조선시대 기병으로 유명했던 사람은임진왜란 이전의 신립이다. 그는 니탕개 난을 진압할때도 기병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임란 개전 시에도 탄금대에서 왜병과 붙었을 때자신있는 기병을 활용해 보려다 옥쇄하였다. 다만 조선시대 우리나라 말의 상태에 대한역사적 기록을 볼 때신립의 기병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 호쾌한 존재였을지는 의문이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중무장을 하고 병사가 말을 올라타면 말이 자빠져서임금님 앞에서 사열하는데도 갑옷을 입고 타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쇄미록에도 나오는 말들은 죄다 비실비실이다. 말은 주로 물건을 나르거나 장거리 여행에 쓰였는데 걷다 자빠지는 녀석들도 많고 병도 많았던 것 같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 기록에도 조선말 상태는 나오는데, 조그만 녀석이 성질이 더러운 것으로 나온.. 2025. 8. 24. 한반도 주변의 말의 역사 최근 말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국제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바, 필자 역시 한반도 주변의 말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논문으로 준비 중에 있다. 조만간 그 성과가 빛을 보게 될 것이라 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말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여 단순하게 접근하면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많다. 다만 말 사육의 기원과 확산에 대해서는최근 유럽학계에서 떠들석한 것 보다는동아시아에 그 새로운 연구 성과가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다. 이 지역은 말 사육의 유입이 비교적 고고학적으로 확실히 파악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말 사육이 도입되는 경로가 조금 불확실한 측면이 있는데, 한국의 말사육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인가아니면 북방에서 내려온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겠다. 역시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 하겠다. 사육 말은 약 .. 2025. 8. 24. 일본 유히가하마 유적에 대해 앞서 쓴 유히가하마 유적에 대해 조금 더 써보겠다. 여기는 필자가 알기로 가마쿠라 시 해수욕장으로 안다. 그런데 가마쿠라 시대는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전란의 시대라 할 가마쿠라 시대에 이곳은 무사들 사이의 전란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면그 처형장으로 쓴 모양으로 이곳에서 발굴한 인골만 현재 4000 개체가 넘는다. 필자가 수십년 동안 걸쳐 모신 조선시대 인골이 200-300분 정도이니 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인골에서는 앞서 쓴 것처럼 처형의 흔적, 동란의 흔적이 다수 나왔다. 일본사에서는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라이벌이라 할 닛타 요시사다가 10만 병사를 이끌고 가마쿠라로 쳐들어가그곳을 지키던 막부군을 전.. 2025. 6. 17. 인골에 보이는 폭력의 증거 김 단장께서 앞서 쓰신 바 고고과학적 측면에서 폭력의 증거에 대해 조금 써본다.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 과거라고해서 왜 주먹질이 없었겠으며 지나치게 나가면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왜 었겠는가.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러한 폭력의 증거가 체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가가 어떤 정치적 권력의 출현의 증거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필자가 조사한 바 있는 인더스 문명도 앞서 한번 쓴것 같지만 이러한 체계적 구조적 폭력의 증거가 많지 않다는 점이 왕릉이라던가 빈부차가 도시 유적안에서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현지의 연구자들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사실의 하나였다고 기억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가장 처절하게 나타나는 시기의 유적 중 하나가 일본의 중세유적이다.. 2025. 6. 17. J0: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原渡來人 필자와 함께 공동작업을 하시는 분과 논의한 결과, 한반도 남부에 있었을지도 모르는도래계 야요이인과 관련있는 그룹으로, 현대일본인과 유전적 특징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원도래인이라고 쓰고 영어약자로는 J0로 부르기로 했다. 원삼국시대 할 때 그 원도래인이다. 도래인의 proto-type이라는 뜻이다. J0도 같은 의미이다. 일본인의 prot-type이니 J에 숫자 0이다. 일본 측 DNA연구에서 한반도 남부에 "있었을것이라 생각되는" 사람들로, 있었다 하더라도 집단을 이루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다양한 유전자 풀 속에 섞여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설정이 곧 이들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그 실재여부는 앞으로의 연구에 의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일본 측 연구에 의해 이.. 2025. 4. 20. 이전 1 2 3 4 5 6 ··· 2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