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기병으로 유명했던 사람은
임진왜란 이전의 신립이다.
그는 니탕개 난을 진압할때도 기병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임란 개전 시에도 탄금대에서 왜병과 붙었을 때
자신있는 기병을 활용해 보려다 옥쇄하였다.
다만 조선시대 우리나라 말의 상태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볼 때
신립의 기병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 호쾌한 존재였을지는 의문이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중무장을 하고 병사가 말을 올라타면 말이 자빠져서
임금님 앞에서 사열하는데도
갑옷을 입고 타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쇄미록에도 나오는 말들은 죄다 비실비실이다.
말은 주로 물건을 나르거나 장거리 여행에 쓰였는데
걷다 자빠지는 녀석들도 많고 병도 많았던 것 같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 기록에도 조선말 상태는 나오는데,
조그만 녀석이 성질이 더러운 것으로 나온다.
수틀리면 타고 있는 사람을 떨어뜨리거나 물기도 하는 존재로 나오는데
그렇지만 적게 먹는 것에 비해 멀리 가는 것은 매우 높게 치고 있다.
우리나라 말은 일단 역사적으로 사육되던 말들의 체격 상태부터 면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서양의 말 연구 보고는 정말 부럽기는 한데
그동안 우리나라 동물고고학 투자와 지원이 너무 안 되어
우리는 걸음도 아직 못 뗀 상태라 할 수 있다.
참,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키우던 여러 사육동물들에 대한
선교사들의 평은 대부분 좋지 않은데
딱 하나 극찬을 받은 것이 있으니 바로 소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 조선시대 키우던 사육동물은 외래품종으로 거의 싹슬이 교체되다 시피한 것이 대부분인데
끝까지 살아 남아 지금도 각광받는 것이 한우다.
한우의 체격과 품성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매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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