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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역원(驛院) : 보수원(寶樹院)의 실체를 확인하다 조선시대 용인에는 2개의 역驛과 3개의 원院이 있었다.(역은 사신이나 관리가 왕래할 때 마필을 공급하던 곳이고, 원은 공공 숙박시설, 즉 여관을 의미한다.)1. 구흥역駒興驛 : 현의 남쪽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다.2. 금령역金嶺驛 : 현의 동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구흥역과 30리 간격을 두고 있었다.(18세기 제작된 해동지도에 따르면, 구흥역에는 말이 10필, 금령역에는 말이 5필이라고 하여, 구흥역의 규모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1. 보시원普施院 : 현의 서쪽에 있다.2. 홍화원弘化院 : 현의 남쪽에 있다.3. 금령원金嶺院 : 금령역에서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중 '보시원'은 서변면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보정동 연원마을 부근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2024. 6. 16.
조선후기 도성 방어를 위한 경기남부 요충지 용인 석성산성 용인 석성산성은 용인시의 진산鎭山인 석성산에 위치하며, 보개산성寶蓋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성산’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633년의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으로 1656년 『대동여지지大同與地誌』가 ‘보개산’으로 기록한 것에 비해 더 이른 시기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석성산’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반까지의 관찬지리서에서는 보개산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볼 때, ‘석성산’은 속칭俗稱의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석성산성이 조선후기에 도성을 방어하는 경기남부의 요충지였다는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애 류성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필 수 있다.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 류성룡柳成龍.. 2024. 6. 16.
墓[묘]란 무엇인가? 다른 무덤과는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갈라지는가? 墓란 무엇인가? 그 유사상품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어 그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한 이가 이미 2천년 전에 있었다. cf. 墳[분]·冢[塚, 총]·壟[롱]·丘[邱, 구]·培[배]·堬[유]·采[채]·埌[랑]·塿[랑랑]·墲[모]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이 말하는 ‘冢[총]’(괄호안 푸른색은 곽박주郭璞注)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 秦晉之間謂之墳(取名於大防也), 或謂之培(音部), 或謂之堬(音臾), 或謂之采(古者卿大夫有采地, 死葬之, 因名也), 或謂之埌(波浪), 或謂之壟(有界埒似耕壟, 因名之), 自關而東謂之丘, 小者謂之塿(培塿, 亦堆高之貌.洛口反), 大者謂之丘(又呼冢爲墳也), 凡葬而無墳謂之墓(言不封也. 墓猶慕也), 所以墓謂之墲(墲謂規度墓地也. 漢書曰:初陵之모, 是也.) 이로써 보면 墓가 무덤이기는 하되,.. 2024. 6. 16.
콩농사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 필자가 이런 억측에 가까운 이야기를 과감하게 하는 이유는 뭐 콩농사가 한국에서 세계최초로 시작된 자랑스러운 역사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콩농사가 한국과 만주일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콩농사는 단백질원이고 중요한 잡곡이긴 한데 옛날이라고 콩을 깡콩밥을 지어 퍼먹었을 리가 없다. 그건 조, 기장, 수수 등과는 달리 콩은 절대로 주곡식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깡 조밥, 깡기장밥은 먹어도 깡콩밥은 절대로 못 먹는다. 깡콩밥을 찌건 삶건 해 먹어 보면 알 일이겠다.  그러면 콩농사는 왜 짓는가? 조, 기장, 수수 등과 함께 지어 영양학적으로도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보완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콩농사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콩농사는 .. 2024. 6. 16.
텔 아스와드 Tell Aswad, 질그릇 발명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 농업 공동체 마을 텔 아스와드 Tell Aswad 는 기원전 8천500년~7천500년 무렵 질그릇 발명 이전 근동 초기 신석기 시대 참고 유적으로 간주된다. 텔 아스왈드란 "검은 언덕 Hill Black"이라는 뜻으로 수욱수 Su-uk-su 혹은 슉사 Shuksa 라 일컫기도 한다. 면적은 대략 5헥타르 정도인 이 초기 농촌 마을은 위협을 받고 있는 시리아 고고학 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다.이곳은 시리아 다마스쿠스(33°24'14” N; 36°33'00” E)에서 동쪽으로 30km, 600마스에 위치하며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D. Stordeur 박사(프랑스 명예 CNRS, 명예)가 발굴했다.   질그릇 등장 이전 신석기 B시대 Pre-Pottery Neolithic B에 인간이 점령한 텔 아스와드는 근동 지역 초.. 2024. 6. 16.
신석기시대라고, 청동기시대라고 단군 자손들을 거지로 만든 고고학 저 도판은 출처가 현대환이다. [松菊里遺蹟 54地區 住居址에 關한 檢討] 이른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했다는 집터 평면 형태를 분류한 것인데, 이런 것들이 도대체 상부 구조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는 얼마나 학술적 판단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나 모조리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뭐 평면이 방형이건 원형이건 관계없이 이런 청동기시대 집터도 그렇고 시대를 좀 올라가 암사동 신석기시대 집터 양상도 본다. 이런 거지 같은 집으로 복원해 놨다. 실은 이게 이 유적을 발굴했다는 고고학도들이 그린 것이다. 내부는? 저런 데서 어찌 생활한단 말인가? 신석기시대는 저리 생활해도 되나? 그래? 저 딴 거지 같은 그림은 저런 데서는 단 한 번도 생활체험을 해보지 않는 자들이나 그려낼 수 있는 모습이다. 맨바닥에서 짚 깔고 혹은 ..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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