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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재등장을 어찌 봐야 하나 정권 교체 직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유홍준이 물망에 오를 때 이미 나는 가망없는 자가 발전이라는 말을 주변에는 자주 했으니첫째 이미 팔순이 다 된 송장 장관은 있을 수 없고 둘째 그러기엔 흠결이 너무 많아 청문회 통과는 난망하며셋째 더는 이 시대가 유홍준을 부르는 시대는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그럼에도 그는 언필칭 문화 실세처럼 군림했으니 무슨 위원회 위원장 감투 쓰고 후보자 지지 발언하고 또 무슨 진짜 실세인양 그 주변엔 이른바 꿈을 꾸는 사람이 몰려들어 패거리를 만드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그 쓰임새는 우는 아이한테 던져주는 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그의 국박관장 임명은 문화실세의 현장복귀가 아니라 실은 은퇴작이다.그의 시대는 끝났다.노무현시대 문화재청장이 그의 쓰임을 극한을 보여준 불꽃이.. 2025. 7. 20.
제사에 너무 올인하지 말라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기층사회까지 유교적 질서유교적 세계관유교적 문화가 침투한 시기를 길어봐야 일이백년, 족보는 그 진위가 의심스러운 것 아니면, 계보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만약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 아직 먼 친척들이 살아 그 동네가 삼 사백년은 집성촌으로 내려온 깡촌 마을 출신에 이름 석자 대면 다 아는 집안의 문중 종손들이 아니라면 아니, 족보에 적힌 이름 석자가 조선시대 호적에서 확인한 이름들이 아니라면, 족보에 적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보고 우리 집이 대단한 집안이라고 생각하며집안의 기강을 잡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족보에 적힌 벼슬? 관직?미안하지만 우리나라는 18세기 이후 공명첩을 써서 관직을 뿌린 나라다. 양반층이 급증하여 죄다 유학이 되어 면세층으로 빠져.. 2025. 7. 20.
위로 삼대가 양반에 중요한 이유 흔히 삼대가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라던가, 과거 볼 때는 반드시 위로 삼대 양반이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런 규정은 아무 데도 없다. 낭설이라는 주장도 또 반대편에는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일까? 위로 3대가 벼슬을 해야 양반이다, 뭐 이런 규정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문제는 역시 호적이다. 호적에 보면 자기쪽 위로 3대의 이름과 직역을 적고, 처가쪽 위로 3대의 이름과 직역을 적게 되어 있는데, 배운 사람이 아니면 자기나 처가쪽 3대의 이름을 못 적을 뿐더러, 직역은 소위 말하는 양반 직역은 호적에서 딱 보면 알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과거에 응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기 전에 자기 호적에서 요즘으로 치자면 등본을 떼어 들고 갔다고 하던가, 그 등본에는 당연히 자신의 직계 3대,.. 2025. 7. 20.
연해주 솔빈강에서 상념한 왕서방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체르냐치노 라는 곳 일대 광활한 평원을 관통하는 솔빈강을 배경으로 박은 한 장면이라 촬영 시점은 2006년 7월 21일이라 나오는데 내 착오가 아닌지, 그 이듬해 아닌가 모르겠다. 암튼 대략 20년가량 시간이 흘렀다. 당시 이 인근에서는 정석배 교수가 이끄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조사단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소재 극동대학교랑 말갈 유적을 발굴조사할 무렵이라저때가 내가 두 번째 방문이었는지, 첫번째 방문인지 기억에 없다. 아마 첫 번째였지 않나 싶다. 이 일대는 온통 광활한 평지였으니, 그 옛날에는 밭농사를 지었음이 확실하거니와, 그 첫 번째 방문 때는 온통 묵정 잡목밭이었지만 그 이듬해에 갔을 적에는 이미 상당한 개간이 이뤄져서 내가 놀랬거니와저 사진 뒤편을 보면 개간한 흔적이 .. 2025. 7. 20.
대동보의 근대성 공통의 시조로부터 갈려 나온 모든 후손을 몽땅 다 적어 놓은것을 대동보라 하는데 사실 파의 시조로 부터 나온 모든 후손을 적는 파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집집마다 꽂힌 족보들은 그 안에 근대성을 담고 있다. 지금 족보들은 적사차별도 없다. 모든 후손을 골고루 다 적는다. 족보를 봐서는 자기 집 족보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해도 도대체 적자인지 서얼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현대 족보의 근대성의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호적만 봐도 적서의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물론 19세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호적에는 군역상의 임무, 즉 직역을 적게 되어 있는데 적자와 서자로 직역이 달랐다. 예를 들어 유학은 서자는 18세기 초반까지도 쉽게 못 적었다. 족보에 업무, 업유 등으로 적어 놓은 경우 높은 확률로 .. 2025. 7. 20.
노비가 양반 되기 사실 반 상상 반으로 조선시대 노비가 양반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선 노비가 외거하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더라도 자기 재산 축적이 가능하며심지어는 땅도 자기 땅을 사고 파는 것은 물론, 노비의 노비도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8-19세기가 되면서 양반층 중에 경제적으로 사실상 신분을 유지 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양반 중 장자 상속 등으로 여전히 많은 토지를 집적하고 있는 상위의 사람들을 제외하면양반층과 평민, 심지어는 노비들 중에도 경제적으로 이들을 앞서기 시작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노비가 자기 성을 갖고 나중에 양반이 되더라도 모두 다 도망가서 딴 동네에서 성공했으리라 보면 착각이다. 대부분은 자기 조상 대대로 노비로 살던 동네에서 이들은 성공해서.. 202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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