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174 량패(良貝) 신라 진성여왕 막내아들로 당에 사신으로 간 행적 말고는 이렇다 할 흔적이 없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진성여대왕(眞聖女大王)과 거타지(居陁知)' : 이 왕(진성여왕) 때의 아찬(阿飡) 량패(良貝)는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 해적들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 쏘는 사람 50명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우리말로는 골대도骨大島라 한다)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나 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 량패공(良貝公)이 이를 근심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더니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못 위에다가 제물을 차려 놓자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치솟았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양패공.. 2018. 3. 21. 부호(鳧好) 신라 하대 진덕여왕 때 권신 각간 위홍의 부인이자, 진성여왕의 유모로 그 역시 권력을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진성여대왕(眞聖女大王)과 거타지(居陁知) : 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임금이 된 지 몇 해 만에 유모(乳母)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의 남편 위홍잡간(魏弘迊干) 등 3~4명의 총신(寵臣)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해서 정사를 어지럽히자 도둑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나라 사람들이 근심하여 이에 다라니(陁羅尼)의 은어(隱語)를 지어 써서 길 위에 던졌다. 왕과 권세를 잡은 신하들은 이것을 얻어 보고 말했다. "이 글은 왕거인(王居仁)이 아니고는 지을 사람이 있겠느냐." 이리하여 거인을 옥에 가두자 거인은 시(詩)를 지어 하늘에 호소했다. 이에 하늘이 그 옥에 벼락을 쳐서.. 2018. 3. 21. 부호부인(鳧好夫人) ☞부호(鳧好) 2018. 3. 21. 양패(良貝) ☞량패(良貝) 2018. 3. 21. 위홍(魏弘) 신라 하대인 헌강왕~진성여왕 시대 정국을 좌우한 신료다. 헌강왕 즉위와 더불어 이찬으로서 상대등에 올랐고, 이후 각간으로 진급하고, 진성여왕 시대에는 왕과 농밀한 관계를 발판으로 권력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그를 어떤 기록에서는 진성왕의 남편이라 했다. 진성여왕 시대에는 승려 대구와 더불어 향가집인 삼대목을 편찬하기도 했다. 그가 죽자 진성여왕은 혜성대왕에 추봉했다. 삼국사기 권 제11(신라본기 제11) 헌강왕 : 헌강왕(憲康王)이 왕위에 올랐다...즉위하여 이찬 위홍(魏弘)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예겸(乂謙)을 시중으로 삼았다.삼국사기 권 제11(신라본기 제11) 진성왕 : 2년(888) 봄 2월에 소량리(少梁里)의 돌이 저절로 움직여 갔다. 왕은 평소 각간 위홍(魏弘)과 더불어 정을 통해 왔는데, 이.. 2018. 3. 21. 진성여왕(眞聖女王) 신라 제51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887∼897년이다. 앞선 정강왕이 후사 없이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연이은 실정과 문란한 생활이 농민반란을 불렀다 해서 헌강왕 서자인 요(嶢)한테 선위하고는 물러났다. 재위기간 중에 삼대목이라는 향가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역사는 그의 문란한 행실 중 대표격으로 삼촌 위홍과의 애정 행각을 들었지만, 신라시대 근친간 결혼까지 흔했다는 점에서, 이는 후대 악의적인 평가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제11(신라본기 제11) 진성왕 : 진성왕(眞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만(曼)으로, 헌강왕의 여동생이다. 크게 사면하고 여러 주와 군의 1년간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 황룡사에서 백고좌회를 열고 왕이 몸소 거둥하여 설법(說法)을 들었다. 겨울에 눈이 오지 않았다.2년(888).. 2018. 3. 21. 이전 1 ··· 3173 3174 3175 3176 3177 3178 3179 ··· 33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