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우리는 이른바 역사의 대중화를 표방하면서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출판물과는 나름의 차별성을 기하려 했다. 직업적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것이건, 아니면 소위 역사학을 취미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집필한 것이건, 거의 대동소이하게도 그들은 한결같이 ‘계몽’과 ‘교시’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오직 나만이 역사를 알고 있으며, 그러니 그런 내가 설하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훈수주의'적이며 독자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군림주의’가 이들 역사대중물을 장식하고 있다. 원전을 빼어버리고 각주만 지워버리면, 그것이 역사대중물이 되는 줄 착각하는 출판사와 필자들이 너무나 많다.
원전이 지워지고 각주가 지워진다는 것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소멸됨을 의미한다.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 이것은 ‘교시’일 뿐이며 ‘계몽’일 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출판계를 난무하는 이른바 역사대중화물은 이런 교시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학술적인 글이 가장 대중적인 글이라고 믿는다. 이에 우리는 철저한 증거주의를 채택하려 하였다. 주장하는 근거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소개하였다. 출처와 근거를 우리는 독자와 ‘대화’하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원전과 근거에 대해 사색하게 하고, 나아가 이를 발판으로 우리 집필자들의 주장을 근본부터 회의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는 독자와 책이 대화하는 길이라 확신한다."
《신라 속의 사랑, 사랑 속의 신라》 (신라사학회 편, 2006, 경인문화사)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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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고는 내가 썼으며, 김창겸 형이 조금 손을 댔다. 채택하려 하였다 거나 소개하였다 와 같은 어투는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채택하려 했다, 소개했다고 보냈지만, 영감이 저런 구닥다리 표현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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