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개성 문인 한재락韓在洛의 《녹파잡기綠波雜記》는 당대에 이름을 떨친 기생 66명과 명인 5명을 직접 만나보고 적은 일종의 인터뷰다.
19세기 조선의 풍속과 예술 흐름을 엿볼 귀한 자료인데, 근래의 번역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좀 불완전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안대회 선생님의 새 번역이 나와 기존 번역의 오류들을 상당히 바로잡았다.
나오자마자 사서, "고려시대에도 이런 자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한재락의 형님 되는 한재렴韓在濂이라는 분은 고려시대 개경의 옛 모습을 고증한 《고려고도징高麗古都徵》이란 저술로 유명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녹파잡기》에 비평을 단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가 "이 책에서 첫째가는 여인이다"라고 극찬한 영희英姬라는 기생이 있다.
한재락도 《녹파잡기》 상당한 분량을 그에게 할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꽤나 흥미롭다.
- 영희는 자가 소미小眉이고, 호가 쌍희관雙喜館이다. 우아하고 차분하며 단정하고 소박하다. 또한 따뜻하고 고아하며 총명하고 민활하다. 사람됨은 국화꽃처럼 담박하고, 재주는 비단처럼 뛰어나다. 노래와 춤을 잘하면서도 아무것도 잘 하지 못하는 듯이 다소곳하다. 난초를 즐겨 그리는 성품으로, 마른 잎과 성근 꽃잎을 그린 그림은 필묵이 수려하고 윤기가 흘러 옛사람의 필의筆意를 깊이 터득한 듯 하다. 거처하는 방에는 담황색 발을 치고 무늬목 서안書案을 놓았다. 자기와 완상품 및 서화를 진열해놓고 온종일 향을 사르며 단정히 앉아있다. 방문 앞을 지나가도 안에 아무도 없는 듯 적막하다. 훗날에 태어난 빼어나고 수려한 여인이다.
이름이나 맨 마지막 문장을 바꾸면, 기생이 아니라 어느 선비의 열전列傳이라 해도 손색없는 문장이다.
기생 같은 하층의 인물에게도 이러한 묘사가 가능했고, 그것을 자하 같은 명사들도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이것을 이른바 '근대성'과 연관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19세기 조선을 한 번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201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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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평양 기생들의 추억 《녹파잡기綠波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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