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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황도(三輔黃圖)》 6권

by taeshik.kim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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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황도 서문> 

 

원저자는 불상이며 성립 연대 또한 알 수 없으나 東漢 末 이전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三國시대 魏人인 여순如淳의 《한서주漢書注》에 이미 인용되기 때문이다.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서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니 이때는 一卷本 《三輔黃圖》이었다. 그 뒤 南宋 조공무晁公武의 《독서지讀書志》에서 이를 三卷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재直齋書錄題解》에서는 兩卷이라 했다.

 

《四庫全書總目》은 여수겸勵守謙이 收藏한 六卷本을 저록하면서 佳本으로 간주했다. 육권본은 漢代 三輔 지역의 古跡을 主로 삼으니 특히 長安을 가장 충실이 기술했다. 그 외에 秦漢 시대 三輔 지역의 風俗도 덧붙였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이 책을 가리켜 “이에서 기록한 궁전과 원유의 제도는 조목별로 잘 분류해서 상세함에 지극하니, 옛것을 궁구하는 자에네는 늘 취할 바가 있다(所記宮殿苑囿之制, 條分縷析, 至爲詳備, 考古者恒所取資)”고 평가했다. 제목에 들어간 “삼보三輔”란 한 무제漢武帝 때 경조윤京兆尹과 우부풍右扶風과 좌풍익左馮翊 세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지금의 서안西安과 함양咸陽 및 그 부근 지역이다. 요컨대 삼보란 요즘 기준으로 치면 서울과 수도권이다. 

 

설명2

三輔黃圖 

一․간술(簡述)

서경황도西京黃圖라 하기도 하며 황도黃圖라고도 간칭하기도 하며, 작가는 알 수 없다. 初本이 成書한 시기에 대해 손성연孫星衍은 그 序에서 斷案하기를 “漢末人撰”이라 했으며 묘창언苗昌言은 “漢·魏間人作”이라 했다. 나아가 조공무晁公武는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에서 “梁·陳間人作”이라 했으며, 진직陳直은 原書는 응당 “東漢末曹魏初期”라고 해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한다. 다만 모든 이가 다른 책에 인용된 구절을 근거로 삼고 있으니, 조공무晁公武는 다른 이들에 비해 대단히 늦게 본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 가운데 陳直 先生이 말한 東漢末~曹魏初라는 설이 비교적 사실이 근접한 것으로 간주한다.

 

初本 三輔黃圖를 가장 이른 시기에 저록한 문헌으로는 《수서·경적지隋書經籍志)》가 있으니 이에서 이르기를 “黃圖一卷, 記三輔宮觀·陵廟·明堂·辟雍·郊畤等事”라고 소개했다. 《구당서·경적지舊唐書經籍志》와 《신당서·예문지新唐書藝文志》에서는 모두 三輔黃圖 1卷이라 했다. 이로 볼 때 初本이 1卷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전하는 판본 三輔黃圖는 6卷이다. 정대창(程大昌)이 이르기를 “지금 그림이 있는데 이는 당나라 사람이 덧보태어 만든 것이다(今圖則唐人增續成之)”고 했으며, 필원(畢沅)은 이르기를 “아마도 당나라 호사가가 편집했을 것이다(蓋唐好事者所輯)”고 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는 “당 숙종 이후 사람 작품(爲唐肅宗以後人作)”이라 했고, 진직(陳直)은 “현재의 판본은 중당 이후 사람이 쓴 것이다(今本爲中唐以後人所作)”고 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결국 唐代에 1권이 6권본으로 증보되었음을 말한다.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今本 黃圖에 등장하는 지명 중 적지 않은 唐代 地名이 보이기 때문이다.

 

二․판본(版本)

 

(一) 元 치화본致和本:三輔黃圖 六卷, 卷首에 原序와 苗昌言의 題詞가 있으며, 目錄이 있고, 正文에 原注가 있다. 目錄後署致和戊辰夏五余氏勤友堂刊. 此本是元代致和元年刊刻, 그런 까닭에 元刊本이라 한다. 上海 함서루涵芬樓 影印本이 있으며, 綫裝, 卷末에 장원제張元濟의 跋과 校勘記가 첨가돼 있다. 이 本은 사부총간四部叢刊에 三編으로 수입되어 있다. 

 

(二) 설부본(說郛本):三輔黃圖는 分卷을 하지 않았고, 書名 아래에 苗昌言이라는 이름이 발견된다. 앞에는 序와 目錄, 그리고 苗昌言 題詞가 없으며, 正文에는 다만 六卷本 前四卷의 부분 內容이 있어 원래 면모를 지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三) 오관(吳琯) 고금일사본(古今逸史本):簡稱 吳本이라 하며 六卷이며, 卷首에는 原序·目錄이 있으며, 明 萬曆 연간에 吳琯이 校했다.

 

(四) 진계유(陳繼儒) 보안당 비첩본(寶顔堂秘笈本):簡稱 陳本이라 하며, 上下 兩卷이다. 上卷과 六卷本 앞 三卷은 내용이 같고, 下卷은 六卷本 후반 三卷과 내용이 같다. 卷首에는 目錄이 없고, 原序가 있다. 

 

(五) 필원(畢沅) 경훈당총서본(經訓堂總書本):簡稱 畢本이라 하며, 六卷이다. 卷首에는 畢沅의 序가 있고, 原序와 原注, 그리고 畢沅注가 있다. 뒤에는 補遺 1卷이 첨가돼 있다. 

 

(六) 손성연(孫星衍) 평진관총서본平津館總書本:簡稱 孫本이라 하며, 一卷이다. 손성연孫星衍·莊逵吉이 함께 校했고, 孫星衍의 序가 있다.

 

今人이 정리한 주요한 本으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一) 장종상(張宗祥) 校正 三輔黃圖 六卷. 簡稱 장본張本이라 하며, 고전문학출판사古典文學出版社에서 1958년 出版했다. 연인鉛印이며, 평장平裝이다. 卷首에 原序·目錄이 있고, 正文에는 斷句·原注가 있다.

 

(二) 진직(陳直) 三輔黃圖 校正 六卷, 簡稱 陳直本이다. 섬서인민출판사陝西人民出版社에서 1980년 5월에 출판되었다. 이 本 앞에는 진서陳序·원서原序·목록目錄이 있고, 뒤에는 後記가 있다.

 

(三) 하청곡(何淸谷) 三輔黃圖 校注 六卷, 簡稱 하본(何本)이다. 중화서국中華書局 2005년 6월 출판. 이 本 앞에는 原序·目錄이 있고, 뒤에는 보유補遺·부도附圖가 있다.

 

 

 

설명3(출처 규장각)

 

秦․漢 시대 長安(현재 중국 陝西省 西安) 지리와 宮殿․陵墓․學校․郊畤 및 周代 유적 등의 위치와 모습을 수록한 책이다. 顔師古 《漢書注》에 의하면 漢代 長安 以東을 京兆尹‚ 長陵 以北을 左馮翔‚ 渭城 以西를 右扶風이라 했으며‚ 이를 ‘三輔’(현재 陝西省 중부)라 했다. 그러나 後代에는 首都에 인접한 부근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가 된다. 《三輔黃圖》가  저술된 시기를 北宋시대 조공무晁公武는 유소劉昭의 《속한지주續漢志注》를 인용해 南朝 梁·陳代 사이로 지목했으며‚ 정대창程大昌은 《옹록雍錄》에서 唐代 肅宗(756~762) 이후 저술이라 했다. 《三輔黃圖》는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처음 著錄되었고‚ 晁公武는 《군재독서지群齋讀書誌》에서 3권‚  진진손陳震孫은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서 2권이라 했다.

 

《三輔黃圖》는 원래 圖가 있었으나‚ 현재는 6권으로 전해진다. 오랫동안 散逸되어 있어서 增補本과 註釋書가 많다. 《三輔黃圖》 본문은 1784년 필원畢沅이 校正해 《총서집성초편叢書集成初編》에 수록된 《三輔黃圖》(中華書局. 1985)에 의하면 36편은 다음과 같다.

 

三輔沿革·三輔治所(京兆-扶風 등 3편)·咸陽古城․宮(萯陽宮-林光宮 등 21편)·漢長安古城·秦漢風俗·都城十二門(霸城門-橫門 등 12편)·長安九市·長安八街九陌·長安城中閭里·漢宮(長樂宮-司馬門 附 등 7편)·長樂宮(鴻臺殿-長信宮 등 4편)·未央宮(宣室殿-路軨廐 등 35편)·建章宮(駘蕩宮-神明臺 등 7편)·北宮(壽宮-太子宮中甲觀畵堂 등 3편)·甘泉宮(鉤戈宮-曜華宮 附見)·苑囿(周靈囿-李園 등 11편)·池沼(周靈沼-冰池 등 14편)․臺榭(周靈臺-長楊榭 등 24편)·辟廱(周辟廱․漢辟廱)·明堂(周明堂․漢明堂)·圜丘·太學·宗廟(太上皇廟-新室九廟 등 14편)·南北郊(天郊-后土汾陰 등 4편)·社稷(官社․官稷)·觀(豫章觀-含章館 등 28편)·閣(石渠閣-屬車閣 등 6편)·署(虎威-八營 등 3편)·庫(武庫․靈金內府)·倉(太倉-嘉倉 등 3편)·廐(마굿간)(未央宮廐-中廐 등 6편)·圈(秦獸圈-虎圈 등 3편)·橋(黃橋-飮馬橋 등 5편)·陵墓(漢十五陵-王莽妻億年墓 등 3편)·雜錄(禁中-關中八水 등 21편) 등 모두 36편으로 구성된다.

 

권 제1은 <三輔沿革>부터 <都城十二門> 등까지 8편‚ 권2는 <長安九市>부터 <漢宮> 등까지 4편‚ 권3은 <長樂宮>부터 <甘泉宮> 등까지 5편‚ 권4는 <苑囿>․<池沼> 등 2편‚ 권5는 <臺榭>부터 <觀> 등까지 9편‚ 권6은 <閣>부터 <雜錄> 등까지 9편이다.

 

규장각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의 《三輔黃圖》가 소장되어 있다.

 

〈1〉 奎中 4541 : [著者未詳]‚ 孫星衍·張逵吉(淸) 同校‚ 朱記榮(淸) 校刊 : 1885년(光緖 11) :  1권 1책‚ 木版本‚ 24.5 × 15.4cm

〈2〉 奎中 5460 : [著者未詳]‚ 畢沅(淸) 輯 : 1887년(光緖 13) : <補遺>‚ 合 7권 1책‚ 石版本‚ 20 × 12.8cm

〈3〉 奎中 4686 : [著者未詳]‚ 何鏜(淸) 編 : [序文‚ 1592년(萬曆 20)]: 6권 1책‚ 木版本‚ 24.3 × 15.6cm

〈4〉 奎中 3713 : [著者未詳]‚ 王謨(淸) 編 : [淸版本]: <補遺> 合 7권 1책‚ 木版本‚ 24.2 × 15.4cm

〈5〉 想白 古 133-Sa44 : [著者未詳]‚ 孫星衍·張逵吉(淸) 同校 :  1785년(乾隆 50) : 1권 1책‚ 木版本‚ 40 × 18.5cm

 

〈1〉은 孫星衍·張逵吉이 교정한 것이다. 《평진관총서平津館叢書》의 제 22책으로‚ 卷頭에는 1785년 孫星衍의 <序文>이 있다. 다른 판본들과 달리 卷數의 구별이 없으며‚ 三輔의 명칭부터 시작하여 上帝壇에 대한 설명으로 본문을 끝맺고 있다. 槐盧家塾 版本으로 간행한 것이다. 〈2〉는 畢沅의 《경훈당총서經訓堂叢書》의 제 12책으로‚ 《水經注》부터 <玉海>등까지 12종의 사서를 인용하여 注를 단 <補遺>가 있다. 大同書局에서 간행한 것이다. 〈3〉은 何鏜이 편집한 《한위총서漢魏叢書》의 제92책으로 卷頭에는 <序文>이 있고‚ 卷末에는 〈2〉보다 神明臺上有九室 등의 내용이 조금 보완된 <補遺>가 있다. 〈4〉는 왕모王謨가 편집한 《한위총서漢魏叢書》 제 74책으로 등부안鄧傅安이 교정한 것이다. 〈5〉는 〈1〉과 동일한 내용이나‚ 卷頭의 孫星衍의 <序文>이 張逵吉의 <序文>으로 잘못되어 있다. 《三輔黃圖》는 조리가 분명하고 문장이 아름다워 長安과 關中지역의 역사지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三輔黃圖》는 《叢書集成初編》 이외에 《四部叢刊三編史部》(上海書店‚ 1985)에 수록되어 간행되었다. (오병한) 참고문헌 : 《四庫全書總目提要》 

 

원문은 아래 

 

https://ctext.org/wiki.pl?if=en&res=596049&remap=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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