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동서양고전명저번역총서 중 '동양편'에 포함되어 《유종원집柳宗元集》이 완역돼 나오기는 2009년 7월이다. 이 동양편은 재단과의 계약에 따라 도서출판 소명출판에서 출판을 전담한다.
《유종원집》은 번역본 기준으로 전 4권. 역주자는 오수형(서울대)·이석형(중앙대)·홍승직(순천향대) 교수다. 이에 의하면 번역 저본은 오문치吳文治 등이 점교點校해 1979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나온 《유종원집》(전 4책)이라 한다.
이 《유종원집》은 그것을 받아든 내가 근 1주일만에 미친 듯이 읽은 기억이 있다. 한데 이 《유종원집》에 수록된 글 중에서도 죽은사람을 애도한 행장에 속하는 글을 읽으면서 내가 내심 놀라자빠진 데가 있다. 자꾸만 '大墓대묘'라는 표현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大墓는 다름 아닌 무령왕릉 출토 墓券에 두 번이나 보이지만, 지금의 무령왕릉 자체를 가리킨다는 데 의심이 없었다.
내 판단에는 《유종원집》 역주자도 그렇고, 이를 점교한 사람들도 이 '大墓'를 무심하게 넘겼다. 하지만 유종원이 말하는 '大墓'가 등장하는 맥락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면서, 그런 대묘가 등장하는 공간을 보니, 결코 특정한 무덤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과 유종원 집안의 매장 양태 등을 크로스체킹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大墓는 특정한 무덤이 아니라 부계 중심의 한 집안 공동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발판으로 나는 바로 무령왕릉 묘권墓券에 보이는 '大墓' 역시 무령왕릉이라는 특정한 큰 무덤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해 백제 왕가의 무덤이 밀집한 지금의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라는 공동묘역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를 해명하는 논문을 제출하면서 나는 그 결론에 이런 말을 썼다.
"이로써 우리는 무령왕릉을 둘러싼 지난 40년간의 체증 하나를 해결하게 되었다."
(2011. 12. 14)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재선생 연보 益齋先生年譜 (0) | 2020.12.16 |
---|---|
심사자를 엿먹인 수정후 게재 (0) | 2020.12.14 |
13세에 즉위해 18살에 친정한 진평 (0) | 2020.12.13 |
2013년 장성택 처형에 즈음한 북한의 성명 전문 (0) | 2020.12.13 |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 黑板勝美 조선답사 일정표 (0) | 2020.1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