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는 박물관이 표방하는 어린이 혹은 애들 위주 정책이 언어도단임을 말했다.
물론 이야기를 너무 단순화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분명 자발성 여부라는 측면에서 그네들한테 박물관은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대부분 비자발적이다.
주로 부모나 학교, 혹은 유치원 같은 데서 선생이 강제로 끌어다 놓는 데다.
그에 견주어 중장년층은 달라서 자발적 방문자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만큼 박물관은 중장년층한테는 친화적인 문화시설이다.
왜 그런가 하는 물음은 제끼기로 하고 예서는 그렇다는 현상만 확인하기로 한다.
바로 이에서 우리는 박물관 정책이 이율배반 언어도단임을 다시금 확인하니, 일찍이 논한 박물관의 액세서빌러티accessibility 측면에서 자가당착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비자발적인 사람들의 장래 고객화 차원에서 물론 어린이박물관이 표방하는 저런 정책이 아주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신경쓰야 하는 계층이 박물관을 자발로 찾아노는 중장년층에 대한 배려다.
이 배려가 있는가?
없다.
저 accessibility라는 말이 얼마나 폭좁게 쓰이는지는 이미 상세히 지적했거니와,
이른바 사회소외계층이라 해서 그런 사람들만 염두에 둔 배려만 있을 뿐이며, 그에서 벗어난 광범위한 자발적 참여계층에 대한 배려는 전연 없다.
나는 어린이박물관이 있다면 왜 노인박물관은 없는지를 물었다.
이 문제 심각하지 않은가?
애들을 위한 공간은 따로 있는데, 왜 자발적 방문 주된 계층인 중장년층을 위한 별도 시설을 눈 씻고 봐도 없단 말인가?
그네들이 쉴 곳은 제대로 있는가?
없다.
어디 가서 쉬란 말인가?
저 중장년층은 박물관 한 섹션을 돌고 나면 자리에 앉아 쉬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간단히 말해 쉴 공간, 혹은 시설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런 쉼 공간이 전시실 어디에도 없다.
왜 없는가?
빨리빨리 내몰고 새로운 손님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자 설치해 놓으면 거기 앉아 죽치는 노인네들이 생긴다 해서다.
이것이야말로 언어도단 아닌가?
나는 이를 묻는다.
하도 이 문제를 노래를 삼았더니, 그에서 격발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박물관 관련학회에서 준비한다는 세미나 주제가 노령화 시대의 박물관 운운이더라.
늦었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저 accessibility는 거창한 듯하지만 간단히 말해 기회균등이다.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나이들어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데, 그게 왜 무리한 요구란 말인가?
나아가 저 나이가 되면 시력도 급격히 떨어져 유물 안내판도 그네를 고려한 배려가 있어야지 않겠는가?
글씨도 큼지막하니 키우고, 또 색감도 원색 계열로 과감히 재단장해야지 않겠는가?
왜 젊은 친구들만 알아볼 만하게 안내문은 적어둔단 말인가?
지금 박물관에 필요한 것은 어린이박물관이 아니라 중장년층 노령층을 위한 절대의 배려다.
왜?
그들이야말로 자발적 방문자이며, 그런 까닭에 누구보다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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