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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을 마치고 맡긴 짐을 수거하러 일단 잠깐 로마에 들렀다.
내일 아침 괴나리 봇짐 매고선 시칠리아로 남하한다.
그에서 애들이 합류할 때까지 머물지 아니면 차츰 반도 남부를 밟아 북상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팔레르모와 카타니아를 고민하다가 일단 후자로 조금 길게 호텔을 잡았으니 이는 파도바 외우 안종철 선생 강력한 추천에 따른다.
영국은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단행하는 바람에 eu권에선 역외 외국으로 간주된다.
오늘 입국하는데 여권심사를 한다고 길게 줄을 서서 조금 고생했다.
eu 역내로만 다닌 까닭에 이런 풍경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편하게 다녔는데 입국심사라니?
가만 생각하니 그리 생각하는 내가 우습더라.
하긴 들어온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니 나도 반 eu시민이 된 셈이니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 그리스를 떠올렸더니
뿔싸
까마득한 옛날 같다.
간 여정도 막 헝클어져서 특히 에게해 섬들은 어딜 가고 안 갔는지부터가 꿈만 같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만 망각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힘 아니겠는가?
과거를 다 기억한다는 것 만한 고통은 없다.
지워버리고픈 기억, 그걸 다 안고 간다면 나는 복장이 터져 진즉에 죽고 말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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