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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새로운 시대, 새로운 박물관을 제안하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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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조만간 있을 어느 학술대회 토론문에서 일부를 떼어내고, 그에다가 다른 살을 붙였다.  
 
나는 우리 박물관이 탑재한 가장 큰 문제 혹은 현상으로 그 대부분이 버림받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예서 버림이란 간단히 관람객 숫자를 먈한다.

물론 그 평가 기준 잣대를 오로지 관람객 숫자로 매김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하는 문제가 돌발하지만, 따져보면 이것만큼 박물관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객관 좌표도 없다.

그렇다. 박물관은 곧 죽어도 관람객이, 그것도 많이 와야 하며, 그래야만 박물관도 산다. 아무리 좋은 박물관이래도 관람객 없는 박물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점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왜 박물관을 가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박물관을 가지 않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런 물음 혹은 지적에 물론 배반하는 증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요, 그에 대해 언제나 인력과 재원 문제를 거론하지만, 그것이 또 일정 부문 타당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해서 지금 국내 우리 박물관이 그와 같은 고질하는 저 문제가 어느 정도 보완된다 해서 그렇다면 박물관은 아연 활성화하는가? 

나는 그리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박물관 자체가 탑재하는 고질하는 문제가 있다.

그에서 우리는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 솔직해져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박물관은 왜 버림받는가라는 또 다른 명제다. 

그렇다 박물관은 분명 버림받았고 지금도 버림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버림받을 것이다. 

나한테서 그것을 타개할 대책으로 이 박물관계를 배회하는 전가의 보물, 곧 전폭하는 인력 충원과 재원 조달을 기대했겠지만,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수면 아래 잠재하는 더 근원하는 문제다.

그것이 바로 왜 박물관은 버림받는가다. 

당신은 왜 박물관을 가지 않는가?

한데 놀랍게도 저리 물으면 대답은 거의 한결같다.

“뭔가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싫다”

딱 이거다. 

나는 이를 묻는 데서 지금 우리 박물관, 아니 일부 제국주의 박물관을 제외하고서는 세계 모든 박물관이 탑재한 문제를 타개할 빛을 본다고 생각한다. 

공부 안 해도 되는 박물관, 아무것도 몰라도 내가 편안한 박물관, 아니, 아니갈 때보다 가서 더 기분이 째지는 박물관, 이를 기치로 내걸어야 할 때라고 본다. 

 



박물관이 왜 이렇게 천덕구러기 같은 존재, 곧 돈만 먹은 하마가 되었는가? 

저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박물관에 미친 사람들, 살아오며 박물관만이 가장 좋은 곳 가장 갈 만 한 곳이라는 사명으로 투철한 사람들, 곧 이른바 박물관 덕후들이 박물관을 그들만의 리그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열정 그 투혼 폄훼하고픈 생각 추호도 없고, 또 그것이 분명 일정 부문 추앙받아 마땅하겠지만 그것이 혹 우리만의 만족 아닌가를 이제는 냉혹히 물을 때다.

왜 박물관이 좋은가 왜 그런 박물관을 가야 하느냐는 읍소 혹은 당위는 이제 벗어던지고 냉혹히 나는 왜 박물관이 싫은가 나는 왜 박물관을 가지 않는가를 물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박물관계는 온통 자화자찬이다.

그네들끼리 벌이는 리그 경기를 보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게 모든 박물관이 다 훌륭하댄다. 돈 없고 사람 없는 것만 빼놓고는 다 좋댄다.

그래서 언제나 이런 진단에 대한 대증 요법은 똑같아서 정부더러, 국민더러, 위정자더러 이렇게 좋은 우리 박물관한테 더 많은 인력을 주고, 더 많은 돈을 달라 아우성이다. 

그 공작 그래 일정 부문 성공한 것도 있다. 그러니 사립박물관에도 학예직 교육직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국가 지원제도도 생기고, 대학박물관도 넉넉치 아니하지만 쥐꼬리 만한 지원금이라도 국가에서 타가게 된 것 아니겠는가? 

저 논리 근저에는 다 박물관 자화자찬론이 그득그득하다.

박물관은 모름지기 있어야 하는 필수 문화시설이라는 그 당연한 명제 앞에서 그것을 배반하는 반론은 원천에서 불가능한 것처럼 만들어놨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물을 때다. 

박물관 덕후만이 그득그득한 그런 박물관인들이 박물관 상찬론만 일삼으며 박물관이 있어야 하며, 박물관은 좋은 곳이라는 이 당연하는 물음들을 이제는 박물관을 싫어하며, 또 싫어하는 정도는 아닌데 괜히 가면 머리 아플 듯하고, 또 내가 유식해야 대접받을 것 같은 사람들을 주체로 내세워 과연 그러한가로 치환해서 물어야 한다. 

박물관 가서 배워? 박물관 가면 배우거나 건지는 게 있어? 그래서 박물관을 가야 해?

왜 박물관을 가기 싫다는 사람들을, 왜 배우기 싫다는 사람들을 가면 좋다 가면 하나라도 배울 게 있다 윽박한단 말인가?

박물관 덕후들이 내세우는 박물관 상찬론은 더는 식상하니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박물관이 왜 버림받는가?

이제는 자화자찬에서 깨어날 때다. 

새로운 박물관은 박물관에 가면 배울 게 있다는 이 밑도끝도 없는 명제를 거부한다.  

새로운 박물관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윽박을 거부한다.

박물관이 사는 길은 박물관 가면 배운 것도 깡그리 잊어버린다는 역설이다. 

새로운 박물관에서는 일방하는 교육은 사라지며 강요하는 전시는 퇴장하고 그 자리를 공유와 교유와 나눔이 대체한다.

교육이 사라지고 전시가 퇴장해야 박물관이 산다는 말을 음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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