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서 내 동네 이야기를 해 둔다.
이 동물을 교배해서 임신을 하게 하는 일을 김천 내 고향에서는 디딘다 디핀다 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암컷을 끌고서 숫놈을 찾아 가는 일을 디디러 간다 거나 디피러 간다 했다.
종돈 혹은 종소라 할 만한 소는 동네마다 한두 마리가 있었다.
황소? 이거 키우기 지랄 같아서 먹는 양도 엄청나고 승질 또한 더러워서 자칫하다 내가 그 뿔이 들이받친다.
그보다 덩치가 좀 작은 놈이 염소인데, 이 염소 말이다.
숫놈을 같이 키우는 사람치고 그 숫놈 염소한테 제대로 바쳐서 골로 가보지 않은 사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새 짤이나 릴스 영상을 보면 염소 쌈박질하는 장면이 제법 나오는데, 김일 박치기 백배 되는 힘을 지닌 존재가 숫염소다.
나 역시 염소 키우다 여러번 들이바쳐서 다리가 아작 난 일도 있다.
이런 숫놈을 몰고 다닐 때는 절대로 내가 앞서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왜? 뒤에서 들이받기 때문이다.
그러다 진짜 골로 간다. 들이바쳐 논두렁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돼지는 한 우리에서 숫놈이랑 암놈, 그리고 새끼를 같이 키워서는 안 된다.
숫놈이 다 물어죽이며 그것이 아니라 해도 괴롭혀서 안 된다.
숫놈을 그렇담 종돈용으로 따로 키우는가?
소도 그런데 보통은 동네마다 종돈이라 할 만한 데를 키우는 집이 따로 있었다.
그 종돈한테서 새끼를 본다 해서 우리 집 우리에서 암돼지를 꺼내서 뒤에서 싸리채 같은 걸로 살살 몰고 그 집으로 간다.
가서는? 교배케 하는데 이게 말처럼 교배가 쉽지 않아서 그걸 사람이 때에 따라서는 도와줘야 한다.
그 디핀 값은 돈으로 보상해야 했지만, 당시는 물물교환이 일반화한 시대라, 대개 쌀 같은 것으로 숫놈 주인한테 보상했다.
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종소라 할 만한 황소는 동네마다 한 마리 정도가 있었다.
그 숫소랑 내 암소랑 짝지워주고자 해서 내 소를 끌고서 간다.
이걸 내가 어린 시절에 했다. 돼지는 내가 자주 몰고 갔는데 소는 아부지가 끌고 가는 일이 많았다.
말은 동네에 없었으므로 생략한다.
토끼는 대가 암수를 같이 키우기는 하는데, 새끼를 낳고서도 같은 우리에 두면 새끼가 몰살하는 일이 많았다.
동물한테는 부정父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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