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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오스티아 안티카, 자연과 쟁투한 로마의 성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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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그 도읍 로마를 향하는 항구 도시로 그네가 남긴 장대한 도시 유적 오스티아 안티카 Ostia Antica 라는 데를 직접 가서 보고선 두어 가지 단상으로 간단해 소개했거니와

저는 그 항구가 도시가 서기 42년 클라우디스Claudius 황제 명령에 따라 건설될 무렵

일종의 설계도 혹은 조감도라 해서 복원해 놓은 것이니 저때 설계도가 무에 남았겠는가?

발굴조사를 토대하고 관련 기록들을 버무려서 이랬을 것이라고 나름 근거 갖추어 만들어낸 공상이기는 하지만 저 시대 도시 모습을 생각할 때는 아주 긴요하다. 

이 도시가 테베르 강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어구에 있음은 말했거니와 문제는 계속 쌓이는 흙이었다.

이에 대처한다고 클라우디우스는 강 어귀 북쪽에 신항만 건설을 추진하니 이곳에는 장엄한 다층 등대가 있었다.

저 복원조감도에 바다 가운데 그 등대가 보이며 그 라인을 포함해 항구는 시티 월을 구축했음을 본다.

city wall 뭐 있어 보이는 말이나 읍성이다. 암것도 아니다.

집에 담장이 있듯이, 사람이 옷을 끼워입듯이 도시를 둘러싼 담장, 내가 걸친 옷이 씨디월이다.

당시 수도 로마로 직접 통하는 항구로는 이 오스티아와 더불어 포추올리Pozzuoli가 있었다.

기공은 저때 했지만 완공은 서기 64년 네로 황제 때 봤다.

그러다가 대대적인 재정비를 하게 되는지 서기 100년 무렵에 트라야누스 항구 Port of Trajan로 변모한다.

신축은 기존 건물을 대체하지 않고 통합했고 클라우디스 항구는 그 외부로 포섭됐다.

이로써 본다면 기존 도시를 확장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새로운 항만도시는 넓이가 33헥타르에 달했고, 그만큼 물동량도 늘었으며 중요도에서 포추올리 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나아가 고질적인 홍수 문제도 해결했다.

트라야누스는 여러 개 운하를 팠으니 개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포사 트라아나 Fossa Traiana라, 이것이 건설됨으로써 물이 항구와 도시로 범람하지 않고 흘러나갔다. 

오스티아 항구 건설은 로마의 풍경, 경제, 명성을 빠르게 탈바꿈시켰다.

현지에는 마가치니 세베리아니Magazzini Severiani, 황궁, 마가치니 트라이아네이 Magazzini Traianei가 건설되었다.

서기 2세기와 3세기에는 도시 성장과 더불어 영구 정착지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 정착지는 서기 314년 공식으로 포르투스 로마에 Portus Romae 라는 이름의 도시로 탄생한다.

아마 로마항이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내가 현지에서 두어 번 경험 실감했지만, 이곳은 끊임없이 자연과 싸워야 했다.

특히 파도와 바람이 문제였다.

그렇게 번성한 항구 도시는 느렸으나 끊임없는 자연재해로 서서히 습지로 변해갔으며 그리하여 중세가 되면 완전히 잊힌 도시가 되고 말았다. 

자연은 싸워서 이겨야 한는 요물이다.

그냥 놔둬?

그러면 자연이 인간 역시 가만둘 것 같은가?

천만에.

자연이야알로 가장 제국주의적이며 가장 침략주의적인 본성을 지닌 수소폭탄이다.

오스티아 항구 자체가 그러한 자연과의 쟁투 그 산물이며,

그에서  패배하고선 마침내 어떤 참상으로 남는지를 잘 말해주는 증거가 오스티아 안티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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