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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한 사실이 전기傳記에 나온 것이 역력히 말해 주고 있고, 우리 나라의 풍속 또한 그러하였다.
그런데 임진란 이후로 중국의 대소 장관과 정동征東[일본 정벌]의 사졸들이 전후에 몇천 만이나 나왔는지는 알 수 없는데,
모든 음식을 먹을 때 마르고 국물이 있는 것을 가릴 것 없이 전부 젓가락만을 사용하고 숟가락은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어느 때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의 말에는, ‘대명 고황제大明高皇帝의 유훈遺訓에 진우량陳友諒을 평정하기 전에는 음식을 먹을 적에 감히 숟가락을 쓰지 말라 하여 그 꼭 취하려는 뜻을 보인 것이 그대로 습속이 되었다.’고 하나, 그런지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고관대작을 거푸 역임하며 임진왜란기를 보낸 윤국형尹國馨[1543~1611]의 갑진만록甲辰漫錄에 보이는 한 대목이다.
이를 통해 그 당시, 곧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무렵 중국에서는 숟가락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저에서 보듯이 중국은 젓가락으로 모든 것을 퉁치던 시대였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무렵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우리네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출토 유물을 보면 분명 숟가락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흘러 아예 숟가락은 종적을 감추고 만다.
이 숟가락 젓가락이 중국에서는 사정이 어땠는지 주로 고고학적 출토 정황을 보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숟가락이 거의 보이지 않는 대신에 국을 푸는 데 쓴 국자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한데 이 한반도 문화는 삼국시대 이래 죽죽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숟가락 문화다.
숟가락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차이가 무엇을 말해줄까?
그건 그렇고 저 차이를 예리하게 관찰한 윤국형이 놀랍다.
그냥 그런갑다, 다른갑다 하고 흘려버릴 수도 있는데 저걸 저리 채록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하루 세 끼 먹는다는 기록은 없다.
왜? 너무 당연해서 기록할 거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비추어 보면 저 숟가락이 왜 기록이 남았는지를 짐작한다.
이채롭고 생소하기 때문이었다.
이채와 생소는 증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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