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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언지매구言之浼口, 중국에 빡친 어느 대감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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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잠깐 관왕묘, 곧 관우 사당이 임진왜란 참전 명나라를 통해 조선에 침투한 일을 그것을 증언한 윤국형尹國馨[1543~1611] 갑진만록甲辰漫錄을 통해 논급했거니와 

주로 임란기를 전후한 소소한 이야기 모음인 이 만록에는 조선을 오는 중국 사신들 적나라한 행패, 특히 돈을 밝히는 양태를 다음과 같이 증언한 대목이 있다.  


○ 중국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온 사람 중에 태감太監[환관]은 으레 많은 뇌물을 요구하고, 문관은 혹 청렴하고 간결하여 법도로 처신하고, 혹은 시주詩酒와 풍류風流로 그 이름을 남기기도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평범할 따름인데, 아무리 청렴치 못하다는 비난을 듣는 사람이라도 태감 무리보다는 나았다.

내가 본 사람으로는 정묘년에 온 사신 허국許國과 위시량魏時亮이 재주가 있고 기품이 맑고 근신하여 출중하게 뛰어나 사람들이 모두 기린이나 봉황새처럼 높이 우러러보아 중국 사신이 나온 이래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지금까지도 일컬어진다.
 
난리 후에 나온 설번薛藩과 사헌司憲 두 사신은 한창 질서가 없을 때였으므로 접대함이 모양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한림 고천준顧天峻과 행인行人[중국 벼슬 이름] 최정건崔挺健 같은 사람들은 태자太子를 봉한 조서 반포를 위해서 임인년 봄에 왔는데,

이때는 적군이 물러간 지 이미 오래여서 접대하는 예절이 거의 예전 법도를 회복하였는데도 고천준의 탐욕이 비길 데가 없어 음식과 공장供帳의 아주 작은 물건까지 모두 내다 팔아서 은자로 바꾸었으니, 말하면 입만 더러워진다.
 
데리고 온 맹인盲人을 상공相公이라 부르면서 교자를 나란히 하고 다니기까지 하니, 더욱 웃기는 일이었다.

최정건 역시 고천준과 마찬가지였지만 약간 나았다.

200년 이래 중국 사신의 체면이 여기에 이르러 다 사라졌으니, 애석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고천준이 중귀中貴[환관]와 체결하고서 당시의 명망을 사서 장차 유덕諭德 자리에 올라 멀지 않아 정승이 되리라.” 하니, 그렇게 된다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판서를 역임했다는 사람이 쓴 만록에서 저런 표현이 보인다.

언지매구言之浼口, 글자 그대로는 그 구체적인 양상을 이야기하자면 입을 더럽힌다[浼]는 말이라

더 놀라운 점은 우리가 지금도 일상으로 쓰는 말하자면 입만 더러워진다는 말이 저때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암튼 저 중국 사신들 행태에 우리 대감님 빡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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