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건 먼저 가야 한다.
늦게 가는 사람은 그만큼 불리해서 어느 것이나 따라지가 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저 콜로세움이 나한테는 그랬다.
저런 데를 포함해 나는 이른바 유럽 관광 명소라는 데를 아주 늦게서야 갔다.
남들, 주로 이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지만, 나는 아주 늦게 남들 다 가 본 그런 데를 아주 늦게서야 갔으니
어딜 가건, 무얼 찍건 내가 저런 데를 쏘다니고, 또 저걸로 원천에서 장사하는 현지인들한테는 그 무엇이건 따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늦게 가면 또 하나 불리한 점이 남들 다 가 본 데를 뺄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로마를 간다 했을 적에 로마를 가는 내가 처음인데 남들 간 데를 다 빼고 안 간 데만 부러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로마를 갔으면 콜로세움 봐야 하고, 산탄젤로 들어가 봐야 하며, 바티칸도 가야 하며
스페인광장, 나보나 광장, 판테온, 트레비 분수, 진실의 아가리 등등을 뺄 수는 없지 않은가?
남들이 다 갔고 나만 못봤기에서가 아니다.
모름지기 로마라면 그런 데는 봐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늦게 간 사람은 그만큼 가랭이가 더 찢어진다.
그렇게 남들 다 간 데를 뒤늦게 가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예컨대 사진으로 치면 그네가 미쳐 주목하지 못한 구도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도 행유여력이어든 남들 보지 못한 데, 남들이 상대로 게을리한 곳들을 찾아다녀야 하니,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EUR를 찾아 부러 갔고, 남들이 가지 않는 줄리아 에트루리아 박물관을 가야 했다.
왜? 그나마 그런 데서야 남들이 찾지 못한 오직 나만 볼 수 있다는 그런 안도 혹은 예외 혹은 쾌감을 주는 까닭이다.
저 콜로세움이라는 데도 2017년인가 여름에 처음 나는 갔으니, 가서는 남들이 하지 착목하지 못한 구도, 오직 나만이 포착할 만한 그것을 찾았으나
결국 저곳을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찍는 그 구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남들이 다 간 데를, 심지어 나도 가 본 데를 내 친구 춘배는 아직 가지 못했다.
나보다 더 불쌍한 춘배라 해야 용 빼는 재주 있겠는가?
저기 들어가서 고작 하는 짓이라고는 내가 선 그 지점에 서서 저런 사진이나 찍은 일밖에 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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