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성은 기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자업계 전문성 혹은 그 전문기자 제도 문제는 내가 여러 번 지적해서 귀가 아플 테고,
결론만 말하면 이 전문기자 제도는 여러 현실적 제약 때문에 한국에서는 요원하며, 하려면 보직간부 하고 나서 해야 한다! 이것이라
그 이야기 이제 더는 하고 싶지는 않고
암튼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언론계에서 문화재 분야는 대표적인 기피 부서라, 하려고 나서는 기자가 없다.
그런 까닭에 이런 일에 투신하게 되는 경로를 보면 따라서 압도하는 다수가 개끌리듯 끌려와서 어찌어찌하다 어영부영하다 눌러앉게 되는 일이 많은 이유다.
기피하는 까닭은 간단히 말해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데 의외로 이린 기피 분야인 문화재에 터줏대감이 많은데, 이 문제는 앞 문제와 연동한다.
아무도 하려는 놈이 없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내가 눌러앉을 수 있고, 그래서 터줏대감이 된다.
나는 누누이 말했듯이 1998년 12월 1일 이 분야를 전담할 적에 당시 연합뉴스가 당시 문화재 전쟁이 벌어지던 무렵이라 판판이 다른 회사에 물을 드시는 바람에 그걸 좀 막아보라 해서 전략적으로 영입된 케이스였으니,
마침 당시 몸담은 사회부에서는 찍힌 상태라 결과로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되었다.
기피하는 문화재...대개 이런 기피 분야가 하나 특징이 있어 마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듯한데 막상 해 보면 어랏? 의외로 재밌어?
그렇게 해서 이른바 덕후라 해서 한 곳만 주구장창 파고드는 또라이 기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기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절대하는 량이 필요하기 마련이라,
내 보건대 이 분야 알짱대며 까부는 교수놈들 깔아뭉개기 위해서는 5년이면 너끈하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대략 3년 정도면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언론인이 된다.
지금 막 파리 세계유산위원회 세션이 폐막했거니와, 이것도 얼마나 웃기냐 하면, 이 분야 닳고닳은 인재가 문화재청(국가유산청)에 많을 듯한데 천만에? 없다.
내역 따지면 지금 이 업무 맡은 사람들은 신출내기에 지나지 않아, 이쪽에 전문성을 갖췄다고 하는 그 내부 인력들은 모조리 아예 문화재청을 박차고 딴 살림 차렸거나, 다른 부서에서 가서 다른 업무 하고 있다.
정부의 전문성? 이것도 실은 문제가 심각한데, 내부에서는 전문가 그룹이 딴 일을 한다.
그러니 이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전문성과 더불어 몇년 지나고 나면, 외부에서 위촉한 외부 전문가 그룹이 내부보다 더 내부를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희대의 역설이 빚어진다.
세계유산? 전문성 진짜로 잘 갖춘 인물은 문화재청 출신도 아닌 외부 인사들이다.
이 친구들이 결국 문화재위원 먹고 훗날 또 기회가 되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청장이나 산하 기관장 자리까지 낚꿔채 가게 된다.
공무원은 떠나도 이 외부 전문가그룹은 맨 그 자리를 지킨다.
나는 이를 일찌감치 우려했거니와, 외부 전문가그룹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문가 그룹이 특정 그룹에 너무 낙착되고 귀착되며, 문제는 이 외부 전문가 그룹도 그 파이를 키워야 하는데 당장 오늘이 편안하다 해서 언제나 쓰는 그 사람만 쓴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기회를 주어야 하며, 그 사람들로 보폭을 넓혀야 한다.
이 기자 사회의 경우, 모르겠다
남들한테는 그리 보이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대략 그 문화재 기자 생활 10년을 넘어가면서 말이 좀 거창하기는 한데, 후계라 해서 물려줄 후배를 물색하기는 했지만, 이게 참말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언론계 속어로 2진이라 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후배 기자를 데려다 놓기는 했으나, 이 친구들 대략 1년이 되지 못해 다 도망가버리더라.
그런 까닭에 모시고 올 때는 갖은 달콤한 유혹을 하는데 의무 복무기간 마치면 너가 좋아하는 영화하게 해주겠다 등등이 있었으니 지킨 일도 있고 공허함으로만 남을 때도 있었다.
그래 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모르겠는가?
내가 장착한 문제가 아주 클 것이며(그네들한테는 내가 벽일 수 있었다) 용꼬리보단 뱀대가리라 그네도 뱀대가리 하고 싶지 용꼬리 하고 싶겠는가?
하긴 문화재는 용이 될 수는 없지만 뱀꼬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걱정한 후배 문제도 내가 떠나니, 혹은 내가 쫓겨나니 자연스럽게 생겨나더라.
결국 내가 벽이었고 내가 적폐였다.
가장 좋은 전문가 그룹 키우는 일은 비켜주는 일이다.
비켜주면 지들이 알아서 개척하고 지들이 알서 커더라.
그러니 알짱 대며 내가 후배 키운다 제자 기른다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 해댈 것이 아니라 깨끗이 사라져 주라!
신구 조화?
웃기는 소리다.
신구가 어찌 조화하는가?
늙으면 꺼져야 하고 해 쳐먹었으면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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