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과학원 고고학연구소 Institute of Archeology at the Mongolian Academy of Sciences 와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원 고고학민족학연구소 Institute of Archeology and Ethnography of the Siberian Branch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가
2006~2015년 공동으로 후기 흉노 Xiongnu 집단 매장지로 유명한 노용올 Noyon Mountain (Noyon Uul, 한국과 일본에서는 노인울라로 알려짐) 유적 조사를 벌여
모두 8기에 이르는 흉노시대 무덤을 발굴하고 1천200여 점에 이르는 각종 유물을 수습했다.
이들 무덤은 대부분 아주 옛날에 이미 도굴 당한 관계로 그 규모에 견주어 유물이 많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유물도 많이 보인다.
개중 하나가 사업 첫해인 2006년 조사에서 수습한 이른바 헤라클레스 HERACLES 와 옴팔레 OMPHALE 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은판 유물 한 점을 수습했으니
이 유물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무렵 그리스 제품으로 본다.
그런 유물이 어찌하여 이역만리 몽골고원까지 여행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터리라 하겠거니와 쿠팡 직빵으로 왔을 리는 거의 없겠고 여러 손을 거쳐 도착했으리라.
혹 모른다.
그리스 도망병이 어쩌다 흉노 용병이 되지 말란 법도 없으니깐.
언뜻 보면 음식 같은 것을 담아 옮기는 은판 아닌가 싶기도 한데 흉노 무덤에서는(본래는 접시 같은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마구 장식으로 발견됐다.
이른바 현지화가 일어난 셈인데 일전에 소개했듯이 울 엄마는 신일선풍기를 탈곡기로 쓴다.
잡곡에서 잡풀데기를 걷어내는 용도로 쓴단 말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법이다. 이 현지 적응력이 놀랍지 않은가?
그렇담 저 모티브는 무엇인가
리디아 Lydia 는 현대 터키 소아시아에 있던 고대 왕국. 리디아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야만인 barbarians 으로 간주했다.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us 는 리디아인들이 주조를 한 최초의 사람들이었고 이 초기 동전들은 금과 은의 합금인 일렉트럼 electrum 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야기인즉슨 헤라클레스는 친구 이피투스 Iphitus 를 살해하고 델포이 삼각대 Delphic tripod 를 훔친 후 자신을 정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델포이 신탁 Delphic oracle 을 찾았다고 한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헤라클레스는 티린스 Tiryns 의 벽에서 이피투스를 던져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피투스가 살해된 후, 헤라클레스는 격렬한 정신분열 결과 끔찍한 병에 걸렸다.
그는 보호와 치료를 찾아 델포이 Delphi 로 신탁 여행을 갔다.
그러나 피티아 여사제 Pythian priestess 는 그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또 다른 분노가 헤라클레스를 소모시켰고 그는 사원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델포이 삼각대를 가지고 도망치려고 했다.
에피소드가 끝난 후, 아테네 극작가 소포클레스 Sophocles 는 헤라클레스가 느낀 깊은 수치심과 불명예를 쓰고 있다.
델포이 신탁은 헤라클레스가 그의 끔찍한 행동 때문에 1년(3년 아닌가?) 동안 노예로 팔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 세계에서 노예들은 보통 외국에서 왔다.
리디아 여왕 옴팔레가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를 노예로 삼은 것은 터무니없는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찌됐건 옴팔레가 헤르메스 Hermes 신으로부터 이 영웅을 샀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기준으로 야만인인 외국인 여성을 섬기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소 예상치 못하고 도발적인 어조를 취한다.
그가 노예로 있는 동안,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그들의 성 역할을 뒤집는다.
헤라클레스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일을 하고 여성의 옷을 입었다.
한편, 옴팔레는 네메아 사자 가죽 Nemean lion skin 머리 장식을 하고 곤봉 club 을 들고 다녔다.
어떤 동전을 보면 사자 가죽을 걸친 옴팔레를 묘사하는가 하면, 그녀의 어깨에는 헤라클레스 곤봉이 있다.
이런 설정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많은 그림에 영감을 주었다.
로마 모자이크를 보면 사자 가죽을 입은 옴팔레와 방추에 양털을 들고 있는 여성복을 입은 헤라클레스의 역할 반전을 묘사하고 있다.
복무 기간을 채우자 옴팔레는 헤라클레스를 풀어주고 그를 남편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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