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겐지가 갈려 나온 세이와 덴노로부터 따져서 11세째가 된다.
1세를 30년으로 잡으면 대략 300여년 정도 후손인 셈이다.
이때가 되면 세이와 덴노에서 갈려나와 신적강하한 세이와겐지 중에서도 그 지파인 가와치 겐지 (세이와 덴노의 5대손)는 사실상 완전한 무가 집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가집안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은 공가 (귀족) 집안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천대 당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무가정권이 성립할 때까지는.
우리나라, 신라에서는.
무열왕 재위기간이 7세기 중반이니 라말여초의 무열왕 후손이라면 이미 250여년 전에 갈려나온 셈이다.
나말여초의 신라 김씨계 호족들은 자신들이 신라왕실에서 갈려나온 것은 알고 있었겠지만
이미 정체성 측면에서는 완전히 자신들이 살고 있던 해당 지역과 혼연일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 김씨계의 인물이 백제나 고구려 부흥을 외쳤더라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신라왕의 후손이라면 후삼국시대 모두 신라의 편에서 활동했을 것이라 보는데
이 당시는 지금처럼 무슨 무슨 김씨 대종중이 성립되어 있던 시기는 당연히 아니다.
일본의 예를 보면 겐페이합전 당시
미나모토와 헤이케의 지손들은 자신의 조상이나 일족이 누구건 간에 서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싸웠다.
헤이케가 미나모토에 붙은 자도 있었고,
그 반대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창씨가 거의 없는 것이 전통인데,
일본사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라말여초에 성립한 성들은
일본으로 치자면 겐지나 헤이케 정도 되는 대벌족이 된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각 집안의 무슨 무슨 파 하는 씨족들이야 말로,
일본이었다면 창씨해서 새로 성을 만든 경우에 해당한다.
결론은-.
우리나라 본관은 그 덩어리가 너무 커서 특정인물의 역사상 동정을 파악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안된다.
예를 들어 신라김씨, 하면 너무 연원이 오래되어
라말여초에 그의 조상이 신라왕이었냐 아니냐 이런 건 그의 정치적 동향을 파악하는데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다.
라말여초에 신라 김씨의 후손이라 하면 막연히 이들이 신라왕실과 비슷하게 움직였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랬을 가능성 거의 없다고 본다.
라말여초에 지방에서 확인되는 신라계 씨족들은 신라왕실과는 신분이 천양지차로 벌어져 있었고,
이들은 일본으로 치자면 지방의 무사단 정도의 세력을 형성한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쯤되면 신라왕의 후손이라는건 그냥 나름 뼈대있는 집안 후손이었다는 일종의 장식용 멘트이지,
신라왕실의 후예인 어떤 씨족이 백제나 고구려의 부흥을 부르짖는 견훤이나 궁예와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한다고 해도
당시로서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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