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김단장께서 올린 글에 로마 시대
동물벼를 분석하니 대부분이 사육된 가축이요 야생동물은 별로 없다고 하거니와,
이는 우리나라의 육류 소비양상과 참 큰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는 가축보다는 야생동물 뼈 비율이 상당히 높아
그 양상이 생각보다 상당히 후대까지 내려가는 바,
이는 조선시대 일기만 봐도 확연하다.
선물로 증여되는 육류는 노루나 꿩이 대부분으로
소고기는 가끔 한 마리 잡으면 다리채로 보내오거나
육포로 만들어 증여하는 정도이지만,
노루나 꿩보다는 그 양이 많지 않다.
이때문에 우리나라는 조선후기까지도
사육동물의 고기가 야생동물의 고기를 압도한 적이 없다.
닭은 많이 먹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닭고기는 거의 먹지 않았다.
대신 꿩고기를 엄청나게 많이들 먹었다.
구한말 서양선교사들 기행문을 보면
꿩이 날라다니는 통에 산길을 걸어가기 불편할 정도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매사냥 한번 나가면 그날 먹을 고기를 얻는데 뭐하러 닭을 잡아 먹겠는가.
부북일기 보면 부방 나간 군관들이 한 번 작당하여 꿩 사냥을 나가면
잡아오는 수량이 기본이 백 마리씩 되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많은 것이 생선이다. 특히 바다생선.
우리나라 발굴현장에서 나오는 동물 뼈는 그래서 상당히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어류, 바닷 생선이었지만 그 뼈는 대부분 사라지고
큰 동물 위주 소나 말 뼈 등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꿩을 더 많이 먹은,
그런 양상이었을 가능성이 높겠다.
우리나라에 닭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 시기?
당연히 70년대부터다.
우리 세대 머리에 아련히 남아 있는 전기통닭.
한국에서 치킨의 전설이 시작되는 시초라 할 것이다.
***
실물을 앞세운 고고학이 실은 실상을 왜곡할 가능성이 가장 큰 학문임은 새삼스럽지는 않거니와, 그런 맥락에서 한국고고학은 언제나 1960년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의한 부천 쓰레기장을 이야기하나, 그 심각성은 말 잔치에 지나지 아니해서, 유물 유적 너머를 탐구해야 한다는 구호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만 그치고 있다.
저 꿩, 생선만 해도 물론 무덤을 중심으로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을 왜곡한다. 왜? 그 대부분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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