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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강원도의 힘! 들러리를 박차고 주체로, 유형을 버리고 무형으로, 과거를 떨치고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by taeshik.kim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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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강원학대회
강원도 유산과 미래 강원학의 모색
2021년 12월 1일(수) ~ 3일(금)
강원학연구센터 홈페이지
THE 4th CONGRESS ON GANGWON STUDIES
2021년 12월 1일(수) ~ 3일(금)
강원학연구센터 홈페이지



토론

"강원도 고대역사문화권 설정을 위한 제언"(김창겸)에 대한 토론문

김태식 /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장

이 토론을 준비하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두 가지 자료를 찾아봤다. 하나는 江原道라는 말이 탄생한 내력과 다른 하나는 구글어스 혹은 다음위성지도다. 

첫째와 관련해 결론만 도출한다면, 강원도라는 말은 조선 개국 직후인 1395년, 태조 4년에 등장했다. 이후 조선후기 때인 효종~정조 연간에 원양도原襄道니 강양도江襄道, 그리고 원춘도原春道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강원도로 복귀했다. 물론 같은 강원도라 해도, 그것이 커버하는 범위는 시대별 넘나듦이 있어, 우리한테 익숙한 그 강원도랑 완전히 합치하지 않는다. 

강원도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江陵과 原州 두 고을 이름 첫 글자를 딴 것이라, 이는 이 일대 광역에서 두 고을이 수부首府와 같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뜻이겠으며, 강원도 역사를 논할 적에 이 두 권역만큼은 core에 위치한다. 이 두 권역 거대한 장벽이 바로 태백산맥이다. 이 태백산맥을 경계로 삼아 지금의 강원도는 嶺東과 嶺西로 분기하니, 이는 그만큼 강원도 역사 혹은 문화권역에서 대관령이 대표하는 태백산맥이 차지하는 위상이 막강함을 본다. 

문제는 그때의 강원도랑 지금의 강원도에서 그 수부로 지정된 춘천春川 권역이 차지하는 위치다. 이 춘천은 내력을 보면 실상 경기에 가까웠다. 이는 지리로 보아도 서울 경기에서 가깝고, 태백산맥 중심과는 꽤나 먼 내력이라, 강원이 강릉과 원주 첫 글자를 땄음에도, 두 고을의 묘한 경쟁구도의 어부지리 산물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일약 그 수부가 되어 두 고을과 더불어 작금 강원의 3대 수부를 형성한다. 

 



공중 혹은 위성에서 내려다본 강원도는 누구나 실감하듯이 바늘 하나 제대로 찌를 곳이 없을만치 온통 산으로 뒤덮였으니, 그나마 그럴 듯한 평지라 해 봐야 춘천 원주 권역 말고 철원평야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았듯이 강원도라는 말은 그 내력이 600년에 달한다. 이 기나긴 역사는 강원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충분하다. 역사시대를 감안해도, 강원도라는 말이 탄생하기 전에도 일정한 문화권으로 설정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아무래도 지금의 경주 권역을 주축으로 삼는 사관이 지배한 까닭에 그 북쪽이요, 변경이라는 점을 고려해 朔州와 같은 관념을 배치했거니와, 그 중심축이 지금의 한반도 중부 서해안 쪽으로 이동한 고려~조선시대에는 국토의 동쪽이라는 관념으로 변모한다. 북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다만 하나 유의할 점은 이는 철저히 중앙중심적 사고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에서 우리는 강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다고 본다.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강원을 변경 혹은 들러리에서 주축으로 돌려야 한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강원은 언제나 주변이었고, 지금도 그런 사정에서 썩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중앙중심적 사고이며, 강원을 호흡하며 이땅을 사는 사람들이 그러한가는 다른 문제다. 물론 그러한 중앙집권적 사고를 스스로 체화體化한 강원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강원이 떨쳐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당당한 주체로 말이다. 

 



이를 위해 나는 새로운 강원학, 그 표상으로 태백학을 제안하고 싶다. 덧붙여 문화 혹은 역사를 유형과 무형 두 가지 범주로 가르는 일을 나는 용납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보지만,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엄연히 그 둘을 상대로 세우는 갈라치기가 있는 이상, 이를 고려할 적에 이 새로운 강원학 혹은 태백학은 유형보다는 무형에 무게중심을 두었으면 한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는 직접 동인이 된 다른 지역 이른바 역사문화권정비사업을 보면 모조리 첫째 역사고고학 중심이며 둘째 유형 중심주의 사고임을 본다. 강원이 주변인 것도 서러운데 이조차 저들 동네서는 저리한다 해서 따라쟁이가 되어야겠는가?  

내가 말하는 무형에 무게중심을 두는 태백학은 강원 문화 전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체성 도구를 말한다. 이에서 말하는 태백은 강원을 논할 적에 빼놓을 수 없으며, 그 주축인 태백산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좁게는 이른바 산촌문화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강원 전체를 보아도 이 태백산맥을 경계로 영동과 영서가 갈리니, 이 갈림을 이제는 그 가름의 주체인 태백을 소통으로 치환해야 할 때다. 

다른 지역 역사문화사업이 아득한 먼 옛날에 뿌리를 박고서 현대에서 그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나아가 그에서 현재를 비롯한 시간주의을 얼개로 삼거니와, 새로운 강원학 새로운 태백학은 그 시간축을 없애버리고 무게 중심을 현재와 미래로 돌려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아득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중점을 두자는 뜻이다.   

BTS니 블랙핑크며 오징어게임이니 기생충이니 하는 작금 세계를 주름잡는 한류 열풍은 유무형으로 갈라보면 그 주력은 무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문화라는 콘텐츠가 그 핵심이며 주역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강원학 새로운 태백학은 이에 착목해 무형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얼개로 삼았으면 싶다.  

 



이를 통해 강원이 아니면 이룩할 수 없거나 이루기 힘든 그 문화요소를 과감히 발굴했으면 한다. 언뜻 떠오르는 것들로 고냉지농업이 있고 대관령음악제가 있으며, 스키장이 대표하는 여가문화, 비록 이제는 과거가 되긴 했지만, 그 과거에서 아주 가까운 탄광문화와 화전문화, 이제는 마지막 명백을 헐떡이는 너와집, 그리고 꼭 강원만의 특징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강원이기에 유별난 힘을 발휘하는 호반도시도 있다.   

강원만이 줄 수 있는 이런 것들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나는 강원이 주체로 당당히 서는 일이라고 본다. 

 

***

 

이상은 주최측에 제출한 토론문 원고이며, 물론 실제 토론회에서 저걸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았으며, 주축은 유지하되, 조금은 다른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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