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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거리마다 반정부시위에 나선 대학생이 가득했다.
1980년.
즉각적인 민주화를 외치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갔지만, 결과는 우리가 본 바와 같다.
하나는 실패하고 하나는 성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의 하나는.
아래와 같다.
5공화국 때 대학생 수는 이전보다 두 배가 불었다.
1985년 현재 전국적으로 대학생수가 120만명이었다.
참고로 4.19 때 대학생 수 10만 8천.
한일협정 즈음 대학생 수 13만 5천.
80년 서울의 봄 당시 57만명.
87년 6월 당시 120만명 이상.
이것이 87년 당시 가는 곳 마다 대학생 시위대가 가득했고
"넥타이부대"가 출현한 이유다.
아마 이 시대에 대학생수가 백만명을 넘기고,
대졸자가 "넥타이부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상황은 알려진 역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민주주의?
교육 없이는 결코 성공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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