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좀 있어 왜 그런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위선 이 박물관이 어째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그네들 스스로 표방하는 박물관건립문을 통해 본다.
거창박물관 '박물관건립문'이다. 전부를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덕유산 정기 넘치고 영호강 어울져 흐르는 아름다운 이 고장에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열고 기나긴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수많은 싸움과 어려움이 그들을 괴롭혔지만 불굴의 의지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겨냈고 평화를 갈망하며 빼어난 문화의 꽃을 피운 자취들을 이 고장의 산과 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물 하나 하나에 조상들의 슬기와 땀과 눈물이 짙게 베어 있음을 생각할 때 모두가 한결같이 더 없는 우리의 자산이요 자랑입니다.
이 소중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영구히 전승하고 그 얼을 이어받아 향토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의 힘과 정성을 합하여 1988 5.20. 이곳에 거창유물전시관을 세우고 1993. 4. 26 거창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박물관 건립의 참뜻이 면면히 이어 나가기를 믿으며 온 겨레의 번영을 위한 십만 군민의 결의를 이 돌에 새깁니다.
1993. 4. 26 거창군수
좀 더 자세히 본다. 이 박물관 건립을 있게 한 원훈대신 두 분이 계신다.
이를 토대로 정리하면 거창박물관은
최남식 김태순 두 분 컬렉션으로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향토박물관을 설립하자 해서 두 분이 모은 1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하고, 1983년부터 정부지원과 군민들 후원으로 향토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어 마침내 1985년 6월 기공식을 거쳐 1988년 5월 20일, 군단위 최초 공립박물관인 거창유물전시관으로 개관했다.
기초자치단체 중 군에서 건립한 최초의 공립박물관이 거창박물관이다.
저 두 분 중 최남식崔南植(1920. 1. 1 ~ 2007. 3. 1)은 1940년 계림농원을 건립하고 60년에는 거창에 사과를 최초로 도입한 분이라 한다. 이 분 전력 중에 특이한 점은 1971년 그 유명한 거창 둔마리 고분 발견이 있다. 이는 다른 원훈대신 김태순金泰淳(1926. 9. 28 ~ 2008. 4. 25) 선생 전력에서도 같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두 분이 간여한 모종의 모임 같은 데서 둔마리 고분을 발견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내년이 둔마리고분 발견 50주년이다. 같은 해 무령왕릉 발굴을 기억하며, 내년 그 반세기를 즈음해 각종 떠들썩한 잔치가 준비되는 것으로 아는데 둔마리고분은 너무 초라하다.
그 설치 운영 조례는 아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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