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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고대가 모태신앙, 홍일식의 여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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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히 우리 공장 문화부가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 내어놓은 데서 저 책이 처분되지 않고 뒹굴둥굴하기에 집어왔다.

출판사를 보니 고려대학교출판부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으로 간판을 바꾼 모양이라 저는 말할 것도 없이 자회사로 독립하면서 일찌감치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인지로 갈아탄 서울대출판부 영향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서 문화재청장을 지낸 정재숙 씨 부군이 생평을 봉직한 데가 고려대출판부다. 물론 지금은 정년 퇴직했다.





보통 저런 회고록, 특히 대학총장 같은 교육계 인물들 회고록은 그닥 인기가 없다.

왜 그런가 곰곰 따져보면 대체로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고 시종일관 자기 업적을 과대포장 왜곡하고 선생 특유의 훈시하는 말이 난무하는 까닭이다.

저 양반 제목부터가 딱 반발사기 십상이다.

오직 고려대학교 라는 메인 타이틀 아래 적힌 서브 타이틀도 한평생 고대인 이야기 다.

욕먹기 십상이요 어째 저 제목만으로도 해병대 전우회랑 난무하는 각종 향우회가 오버랩한다.

고려대 인근에서 태어나 자라고 고려대에 입학해 그쪽에서 석박사까지 하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 교수로 임용되어 나중엔 그 총장까지 역임한 것은 물론이요 부인도, 자제들도, 또 가까운 인척들도 이화여대를 선택한 조카인지 한 명을 제외하고선 모조리 고대 출신이라는 저 홍일식 선생의 저 회고록도 앞서 말한 그 교육계 인사들의 전형 회고록이 지닌 문제들에서 썩 자유롭다 하기는 힘들다.

발문을 보니 그간 쓴 글들을 적당히 모아 버무린 것이 아니라 아예 2020년에 회고록을 써겠다 작정하고 집필을 시작했다는데 통독하고 보니 팔순을 넘긴 뇐네가 무척이나 자료 조사를 많이 한 흔적이 녹록하다.

그에게 고대는 모태신앙이다.




이토록 고대스러울 수가 있는지 질타 질시를 넘어 찬탄을 자아낸다. 너무 모태신앙이 짙어 내가 포기해선 그랬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저가 안암골에서 고대 총장에 재임하던 시절 신촌골 연세대는 송자 총장 시절이었다. 회고록을 보니 두 사람은 같은 1936년생 동갑내기라 한다.

문화재 업계선 적어도 호적상으로는 같은 해 태생인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이 있고 건축학도 김동현 선생도 아마 저 무렵일 것이다. 회고록엔 정양모 선생과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때 일화가 잠깐 나오며 송자 총장과의 그 독특한 라이벌 심리전 일화도 더러 보인다.

내 기억에 두 사람 대학 운영 스타일은 많이 달랐는데 상대 출신 송자는 그 전력답게 각종 화려한 행보로 이른바 발전기금 모은다고 연일 요란스런 행보를 보인 반면 서울 정통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국문과에 입학해서는 그 유명한 시인 동탁 조지훈의 수제자가 되어 민족문화연구소를 기반으로 이른바 각종 국학사업을 벌인 홍일식은 시종 차분했다.

내가 사회부 기자 시절 마침 고려대를 전담하던 시절 홍일식은 총장이었다.

이토록 재미없는 총장 없었다. 그는 기자들한테 웃음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행동거지는 항상 근엄 단아해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풍모의 소지자였다.

그래서 그때 이런 사람은 대학총장이 아니라 명문 중고등학교장이 딱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때 그 인상은 적어도 이 회고록을 일변하면 완전한 내 오판이었다.

그는 이른바 보직교수의 전형이라 그의 교수생활에서 아마도 보직을 단 한번도 놓은 일이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는 땡김의 귀재였다.

그 행보가 동시대 송자의 그것만큼 화려하지 않았을 뿐이며 그 자신 그 과정이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하나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실로 기가 막힌 운때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타개해나갔으니

무엇보다 그는 잘 땡겼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한테서 거금을 땡겼고 여의사협회인가 가서는 강연하는 기회를 빌려 그 자신이 책임을 진 민연 발간 전질 시리즈를 강매했다.

총장 재임 시절에도 적지 않은 발전기금을 땡겼으니 물러나고 얼마뒤에 보니 고려대가 백주년기념사업을 하며 다 쓰고 말았더라는 일화에선 웃음도 나온다.

그가 저 시절 나한테 고리타분으로 낙인 찍힌 가장 큰 사건은 느닷없는 효孝 선양사업이었다. 왜 이랬는지 물론 이번 회고록에도 아주 비중있게 논급한다.

그럼에도 왜 이 시대에 구닥다리 효를 들고 나오는지 나로선 심히 그런 그가 불편했다고 말해둔다.




각설하고 이 회고록은 한국현대사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사초요 그런 까닭에 한국현대사 단면을 피와 땀으로 얽어낸 실록이다.

단순히 그가 사숙한 스승들, 예컨대 현민 유진오나 총장 출신 김상협, 그리고 회고록 전편에 넘쳐 흐르는 조지훈에 대한 절절한 찬사나 회모 때문만은 아니다.

고려대를 대표하는 양대 연구소 아연과 민연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거니와 왜 그랬는지 그 필연하는 곡절이 당대 한국사 세계사 흐름에서 정리했으며

지훈한테서 물려받은 민연을 일으키려 버둥한 흔적들은 경외 그 자체다.

민속학대관과 한중중문사전 편찬 같은 불굴의 고대 업적이 나는 그의 소행임을 몰랐다. 그는 시대를 거스르기도 하고 앞서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열풍이 불어제끼며 시국선언에 모든 교수가 휩쓸려가는 그 시절에도 나 같은 교수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중문사전 편찬을 위해 동분서주한 그는 단아 근엄과는 거리가 먼 투사다.




다채로운 이력만큼 불굴의 금자탑을 쌓은 그를 나는 경외하기로 한다.

 

***

 

이런 그가 2023년 9월 11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있다. 앞에서 쓴 듯한데, 내가 고려대 출입한 그 시절 총장이었다. 천상 학자이고 선비인 사람이었다. 내가 본 그는 그랬다. 

 

육당 최남선 말년 지켜본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별세(종합)
송고시간 2023-09-11 17:34

https://www.yna.co.kr/view/AKR20230911119651505?section=search 

 

육당 최남선 말년 지켜본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별세(종합)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대학 재학 중 육당 최남선(崔南善·1890∼1957)의 말년을 지켜보고 '육당 연구'라는 책을 펴낸 홍일식(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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