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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고려는 귀족사회인가

by 초야잠필 202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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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조선시대와 다른 "귀족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현재 주류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과연 "귀족사회"가 도대체 뭘 말하는가 하는가 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신편한국사의 "귀족사회"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를 귀족제사회로 보려고 할 때 이에 대해서는「家門·門閥이 좋은 사람들」을 귀족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회를 곧 귀족사회로 이해하였으며, 또 身分制社會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이같은 사회에서의 지배신분층을 귀족이라 보고 이들을 중심으로 말할 때에 그 사회는 곧 귀족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귀족은 ‘일반 인민과 구별되는 신분적·정치적 특권이 주어진 가족에 태어난 인간’ 또는 ‘신분제사회에서의 지배신분층’ 등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많은 듯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귀족은 양민보다 상위의 특권신분층이라는 것과 이러한 신분은 특권적 家系에 출생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血의 상속」에 의해서 특권적 신분을 세습하며, 이러한 세습되는 특권적 신분에 적합한 정치·경제·사회 등 제부면의 특권적 지위까지도 향유하는 인간이 귀족의 범주 속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은 귀족의 개념을 이와 같이 규정할 때, 이 규정에 맞는 사람들이 국가의 요직을 점유하고 귀족제적인 테두리 안에서 나라를 운영하여 간다면 그 사회를 곧 귀족사회라고 불러 무방하지 않을까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드러난다. 즉, 귀족제 아 래에서는 출생신분이 제1차적인 중요성을 가지며 개인의 능력이나 資性은 제 2차적 문제가 된다. 어느 개인은 그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배경이 되는 종족·친척과 合體되어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또 귀족제 아래에서는 관직의 세습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정권은 소수의 가문에 의해 累代에 걸쳐 장악되며 그 결과 문벌이 형성되고 家格의 상하가 생겨난다.

이 家格意識은 혼인관계에 잘 표현되어 귀족들은 동일층 내지는 상층 가문과의 결혼을 희망하며 그에 따라 하나의 폐쇄적인 통혼권을 형성하게 된다.

아울러 저들은 자기네의 물질적 뒷받침을 위하여 토지의 사적 영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의 하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한국사"에서는 고려시대를 귀족사회로 보며 조선시대는 "양반관료국가"라고 보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는 위에 서술한 고려시대의 "귀족사회적 특성"이 과연 조선시대에는 보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고려시대는 "귀족사회", 조선시대는 "양반관료사회"라고 하니 고려시대는 원칙도 없이 몇몇 귀족집안이 관직을 독점하고 자기끼리 다 해먹은 것 같지만,

실제로 고려사를 보면 조선처럼 3년에 한번 식년시로 33-34명 씩 문과 급제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과 급제자들은 그러면 급제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홍패 하나 들고 집에 가서 놀았을까? 

고려시대도 당연히 문과 급제자들이 관료를 형성하게 된다. 조선시대를 "양반관료사회"로 본다면 고려시대는 "양반" 관료사회라고 보기는 좀 갸윳하는 면이 있겠지만, "관료사회"라는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아니, 그 어떤 국가의 전근대사회에서 과연 위 "신편한국사"에 서술한 고려시대와 다른 성격의 사회가 존재한 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에도시대라면 어떨까. 

과거제도도 없이 태어날 때부터 사-농-공-상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사" 안에도 최정점 쇼군에서 농민과 구분 안 되는 하급무사에 이르기까지 세습되는 직역이 토지와 결부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에도시대는 "귀족사회"인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귀족사회"로 보건, "양반관료사회"로 보건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이러한 구분 역시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고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려시대보다 조선시대가 보다 나아진 측면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차이인가? 

일본사를 보면 무가정권은 헤이시 정권-가마쿠라 막부-무로마치 막부-에도 막부로 발전해 오는 동안 동일한 수준의 사회를 유지하지 않았다.

헤이시 정권은 헤이안시대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 받고 있어 이전과 정치적으로 구별되지 않지만, 에도 막부는 전근대 일본의 최고정점을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헤이시와 에도시대는 그렇다면 같은 성격의 사회인가 아닌가?

일본은 헤이시 정권부터 에도 막부까지를 모두 하나의 "무가정권"으로 묶어 설명하며 헤이시 정권부터 전국시대 이전까지를 "중세"로 묶어 설명한다. 

고려시대는 정말 조선시대와 다른 성격의 사회인가? 

그 안에는 수많은 정변이 있었고 사회적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 차이는 없다.

필자가 보기엔 고려시대부터 19세기 개항 때까지는 하나의 시대로 보아야 하고 중국사와 등치하여 설명하자면 이 시대는 당송 이후 청 말까지의 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대를 뭐라고 불러도 좋겠고 그건 역사가의 몫이겠지만, 이 시대를 임의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나누어 별개의 시대로 보는 것은 마땅히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정희와 김부식은 별 차이 없다. 두 사람 모두 과거를 통해 출신했고 관료로 영달했다. 경제적 기반은 직역에 의해 주어지거나 세습되는 토지였고 비슷한 집안끼리 통혼했다. 김정희와 김부식은 정체성에 있어 차이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전체를 하나로 묶어 설명해야 한다. 나누면 안된다. (c)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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