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그런 성향을 더욱 부채질해서인지, 아니면 생득生得한 천성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싸돌아다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전국 방방곡곡 아니 다닌 데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이상하게도 남해를 낀 이곳 경남 고성은 난생 처음이라, 어찌하여 반세기 넘은 인생이 지나도록 이 땅이 왜 여직 미답未踏으로 남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미스터리 천국이다.
그런 내가 마침내 오늘 이 자리를 즈음해, 그래도 현지 한 바퀴 대략이라고 훑어보지 않고서는 자존심이 용납지 아니하는 데다(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원고를 제출하라는 독촉이 주최 측에서 빗발치기 시작해 기어이 어느 날을 잡아서는 현지답사를 감행했더랬다.
텅 비우고서, 다시 말해 이 고장에 대해서는 부러 그 어떤 것도 사전에 채우지 아니한 상태에서 남해를 낀 해변으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많은 데다 그것을 선전홍보하는 전문 박물관이 있다는 정도의 풍문만을 믿고는 무턱대고 길을 나선 것이다.
고백하자면, 주최 측에서 나한테 할당한 저 발표 제목을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그리고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상족암을 ‘象足岩’으로 알았으니, 누군가한테 “상족암이 대체 뭔가” 물었더니 마침 그 지인이 “코끼리 다리처럼 지형이 생겨먹어 그렇게 이름한다”고 했으므로, 철석 같이 상족암에서 나는 코끼리 다리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짐짓 공룡발자국이 많은 해변이라 그것을 코끼리가 남긴 족적으로 알아 그리 명명한 게 아닌가 했더랬다.
하지만 못내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한반도엔 코끼리가 살지 않았을 텐데 그런 코끼리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코끼리에 견준다는 말인가? 하는 갸우뚱도 없지는 아니했다.
한데 뿔싸, 현지에서 마주한 안내판을 보니 ‘象足’은 온데간데없고 ‘床足’이 턱하니 나타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얼마나 허탈했던지. 그에 이르기를 장기간 바닷물 침수 작용으로 형성된 이곳 지층이 상다리를 닮았다 해서 저리 부른다는데, 글쎄, 내 보기엔 상다리 같은 데는 몇 군데 되지도 아니하고, 차라리 시루떡이라 했으면 수긍했으리라.
그랬다. 내가 본 이 일대 해변 암석층은 온통 시루떡 천지라 나는 어떤 천신天神이나 해신海神한테 고사지내며 제물로 마련한 시루떡 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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