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왕조도 원론적으로는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말씀하신 바 사대부는 씨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씨가 있었다면 공자도 맹자도 모두 결격자다.
사대부는 그 의지와 행동이 결정한다.
일본을 보라.
메이지 유신기, 자기 몸을 초개 같이 던진 "사무라이"들은
거의 모두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미안한 하급무사 출신이거나
아니면 심지어는 농민 중에서 나왔다.
이들이야말로 당시 수백 년 동안 막부로부터 대접 받아가며
사무라이로 자임한 상급무사들 보다 훨씬 사무라이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기, 구한 말
19세기의 시기-.
평민과 심지어는 노비에서 성장해 나왔을지도 모르는
소위 "모칭 유학"들-.
이들이 당시 "사대부의 품성"을 갖추지 않았으리라고 우리는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반과 민중 코스프레의 조선후기사 (0) | 2025.09.26 |
---|---|
此士, 느닷 없은 글귀 그 유래는? (1) | 2025.09.24 |
석학이란 말은 아무 데나 붙일 수 없다, 나이 들면 사라져야! (0) | 2025.09.21 |
일본 잃어버린 30년과 많이 닮은 한국 (1) | 2025.09.21 |
화석화한 대변, 왜 중요한가? (0) | 2025.09.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