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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구한말 노비해방과 그에서도 살아남은 노비제

by 신동훈 識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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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노비 해방은 1800년 순조 원년이지만

노비제도 자체의 폐지는 갑오경장인가 그러니 구한말인 셈이다. 

그런데 노비는 갑오경장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그 증거로 곰씹어 볼 만한 내용이 바로, 

몇몇 집안의 이야기에 따라 나오는, 

20세기 초반에 집안에 있는 노비를 해방시키는 시키는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가 자못 황당하여 

갑오경장에 노비제는 폐지이니 당연히 집에 있는 노비는 

주인이 풀어주건 말건 할 것 없이 노비는 해방이 이미 되었을 터인데

무슨 해방을 주인이 또 해준다는 말인가? 

이 19세기 말의 노비의 실상을 

당시의 호적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우리나라는 이 당시 집집마다 소농민화가 격렬히 진행되어

한 집당 호주와 와이프,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가구가 이전과는 달리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노비는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 때가 바로 집집마다 양반을 칭한다는 모칭유학의 전성시대가 되겠다. 

그런데 이 시기조차도

전통적으로 노비를 200-300명씩 거느리고 있던 대지주이자 양반들 중에는 

마지막까지 노비를 20-50명 정도 유지하면서 버티는 집들이 꽤 있었다. 

아마도 집안의 땅을 소작 주지 않고 경작하기 위해 노비 사역을 고수하는 집들이었을 텐데

이런 집이 개항에 인접한 시기의 호적에서도 상당히 보인다. 

이런 집들은 당연히 엄청 넓은 농경지를 보유하였고, 

노비 숫자도 꽤 있는 집이었지만, 

19세기 말 이런 집이 이전시기에 비해 많지는 않았다. 

이 시기가 되면 이미 노비 사역은 농업생산의 주요한 방식이 아니고

지주 전호제, 즉 소작 병작 반수제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느닷없이 보이는 

"엄청나게 많은 토지를 가지고 노비도 많았는데, 

이를 다 해방시키고 나섰다"는 집안의 사정은 사실

19세기 말까지도 노비사역을 풀지 않고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있던 양반집인 셈이다. 

이들이 노비를 다 해방시킨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대로 지배층으로 남아 있었을까? 

21세기의 지금 모습을 보면 이들 중에는 몰락한 집안도 많았을 것이고 

성공적으로 다음 세대로 지배자의 위치를 넘겨준 이들도 있겠지만, 

그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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