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앞서 설명한 슈겐도 승려 미라 말고도
오슈 후지와라奧州藤原 집안 일족 3대 미라가 있다.
이 미라는 성립기반과 담고 있는 스토리가 슈겐도 미라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무대는 일본 동북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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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지역은 에도시대까지도 벼농사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이 때문에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면 벼가 냉해를 입어 그 일대 여러 번 전체가 기근에 빠졌다.
에도시대는 물론 19세기 초 중반 막말幕末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어
동북지역 번은 주기적으로 냉해, 흉년, 기근에 밥 굶고 가족을 내다 파는 게 일이었다.
이 동북지역 번과 같은 위도가 우리나라 평안북도, 함경남도 일대다.
조선 전기에 개척된 육진 위도를 보라.
조선의 육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높은 위도 아닌가?
조선 전기에 필사적으로 개척한 육진의 위도는 홋가이도 지역에 방불하며
시베리아의 북풍을 고려하면 아마 조선 육진이 홋가이도보다 훨씬 추웠을 것이다.
조선 전기에 두만강 일대를 개척한 일은 그 업적에 비해 너무 조명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조선 전기에 두만강 일대를 농경민, 특히 벼농사꾼이 들어가 산다는 것은 목숨을 기근에 맡기고 사는 일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조선 육진 정도로 위도가 높지는 않지만,
동북지역도 역시 벼농사 짓기에는 적당치 않은 기후로
참고로 이 지역 벼농사가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한 시점은
냉해에 강하고 일조량이 적은 데도 수확이 가능한 벼품종이 메이지시대에 개발되고 나서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 동북지역에서 벼농사란 굶주림과 동의어였다.
오슈 후지와라 미라의 이야기는 바로 이곳 동북지역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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