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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귀향은 뻐기며 하지 말이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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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65)

귀향 두 수(歸鄕二首) 중 둘째 

[宋] 강특립(姜特立) / 김영문 選譯評


오십년도 넘는 세월
고향산천 떠나 있다

오늘 아침 어쩐 일로
가족 데리고 돌아왔나

늙어 뿌리에 보답하고
조상님들 생각해야지

동네 골목 사이에서
뻐기며 자랑 말라

五十餘年別故山, 今朝底事挈家還. 老來報本思宗祖, 不爲豪誇里巷間.


옛날에도 출세한 후 귀향해서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말이 있는 걸 보면 고향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출세를 인정받고 싶은 유혹이 본능처럼 강렬했던 듯하다.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초(楚)나라 항우(項羽)를 죽이고 황제의 지위에 오른 후 고향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출세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 패(沛) 땅 중양리(中陽里)로 달려갔다.


그는 흥분하여 손수 축(筑)을 타며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

“큰 바람 일고 구름 날리는데, 천하에 위력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네. 어떻게 용맹한 장사 얻어 사방을 지킬 건가?(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과시하는 천박한 노래에 불과하다. 격조를 논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황제가 즉석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누가 감히 끼어들 수 있으랴? 신하들은 만세를 부르며 이 노래를 사초에 기록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게 했다.


항우는 더 심했다. 그는 대군을 거느리고 관중(關中)으로 입성하여 홍문(鴻門)에서 승전 잔치를 열었다. 이 잔치에서 라이벌 유방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곧 이어 서초패왕(西楚霸王)이라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부귀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富貴不歸故鄕, 如衣錦夜行.)”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탄생했다. 고향 사람들 앞에서 비단 옷 입고 얼마나 뻐기고 싶었을까? 심지어 항우는 범증(范增)의 간언도 듣지 않고 천하의 도성 함양(咸陽)을 버려둔 채 자신의 고향에서 가까운 팽성(彭城)에다 도읍을 정했다.


고향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려는 욕구가 천하 형세 판단도 그르치게 만든 게다. 항우의 실패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가? 더 심하다. 곳곳에 살아 있는 인사들의 생가와 기념관이 넘쳐 난다. 역사의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도저히 기념해서는 안 될 민족반역자, 독재자, 독재부역자, 살인마들의 기념물도 널려 있다. 지역이기주의, 천박한 관광 논리, 생존 인사의 인정 욕구가 빚어낸 눈꼴 사나운 행태일 뿐이다.


고향은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고, 나의 심신을 키워준 곳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출세를 더욱 자랑하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자랑하지 않아도 고향 사람들은 다 안다. 오히려 따뜻하고 겸손한 자세야말로 나의 출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흘러서 큰 바다를 이룬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친구들과 정다운 술잔 기울이며 흐뭇한 명절 보내기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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