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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흙소 채찍질하며 불러들이는 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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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67)

입춘(立春) 

[宋] 왕정규(王庭圭) / 김영문 選譯評


김천 직지사 전나무숲


몇 만 리 밖에서
동풍이 부는지

눈이 아직 홍매 감싸
꽃 피우지 못하네

문득 흙소 바라보고
해 바뀐지 깜짝 놀라

하늘 끝에 봄볕 처음
다다른 줄 알았다네

東風來從幾萬里, 雪擁江梅未放花. 忽見土牛驚換歲, 始知春色到天涯.


김천 직지사 금천


오늘이 입춘이지만 봄은 늘 입춘보다 훨씬 더디 온다. 옛날 중국에서는 입춘에 흙으로 만든 소(土牛)에 채찍질하며 봄이 빨리 오기를 기원했다.

24절기를 태양의 궤도에 근거하여 분류하고 그 기점을 입춘에서 시작한 것은 매우 과학적 입장이지만 그 첫 번째 절기를 ‘입춘(立春)’이라고 명명한 것은 봄을 기다리는 인간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김천 대덕면 조룡리 양지마을 대나무숲


몇 만 리 밖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아직 미미하여 홍매 봉우리를 감싼 눈조차 녹이지 못한다. 그런데도 하늘 끝에까지 다다른 봄기운은 만물의 미약한 변화를 예비한다. 그 미약한 변화에 비해 긴 겨울을 견딘 인간의 소망은 엄청나다.

“문을 열면 수많은 복이 들어오고, 마당을 쓸면 누런 금덩이가 솟아난다.(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나는 수많은 입춘첩 가운데 이 대구(對句)를 제일로 친다. 날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매일 마당을 쓸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김천 고향집에서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다. 대문을 열어둘 수도 없고, 황금이 솟아날 마당도 없다.

중국 감독 구창웨이(顧長衛)의 「입춘(立春: And the spring comes)」이란 영화가 있다. 유럽 성악계 스타를 꿈꾸는 중국 중소도시 성악 가수 왕차이링(王彩玲)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또 왕차이링을 둘러싸고 그녀를 좋아하는 저우위(周瑜), 그녀에게 성악을 배우는 가오베이베이(高貝貝), 화가 지망생 황쓰바오(黃四寶), 발레리노 후진취안(胡金泉)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이루기 힘든 이상을 동경하는 예술 추구자이지만 그 꿈을 위해 사기와 협잡도 서슴지 않는 속물들이기도 하다.

김천 고향에서 얼음 녹는 보湺


아름다운 목소리에 비해 외모가 못생긴 왕차이링은 이들 모두에게 사기를 당하고 자신의 꿈에서 멀어진다. 입춘을 동경하는 이들에게 입춘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다. 시골 도시 예술 지망생들에게 입춘은 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도시는 언제나 희미한 잿빛으로 덮여 있다.

구창웨이란 감독을 아는 이는 드물지만 장이머우(張藝謀)의 「붉은 수수밭(紅高粱)」과 천가이거(陳凱歌)의 「패왕별희(霸王別姬)」를 모르는 이 또한 드물 것이다. 중국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이 두 거장의 초기 영화를 거의 대부분 구창웨이가 촬영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패왕별희」는 1993년 제66회 오스카영화제 최우수촬영상을 수상했다. 그 수상자가 바로 구창웨이다. 그의 카메라가 지향하는 작가 정신은 현대 중국 영화계를 대표할 만하다.


김천 고향에서


2005년부터 직접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영화 「공작(孔雀)」, 「입춘(立春)」, 「최애(最愛)」, 「용두(龍頭)」 등은 장이머우와 천가이거가 이미 잃어버린 중국 영화의 일상적 리얼리티를 잘 보여준다.

올해 입춘에 다시 본 영화 「입춘」은 한동안 잊고 있던 구창웨이 카메라의 잔잔한 감동을 다시 살아나게 해줬다. 그는 「입춘」보다 앞서 만든 영화 「공작」에서도 입춘을 이야기한다. 입춘은 공작과 같다.

공작은 사람이 바라고 서 있을 때는 좀처럼 날개를 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면 찬란한 날개를 활짝 편다. 절기로서 입춘이 아니라 이상으로서 입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아직 몇 만 리 하늘 끝에 다다른 미약한 봄기운과도 유사하다.

김천 집에서


하지만 입춘은 늘 그렇더라도 우리는 올해 입춘에도 “문을 열면 수많은 복이 들어오고, 마당을 쓸면 누런 금덩이가 솟아난다”는 입춘첩을 써붙이지 않을 수 없다.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시의 원 제목은 매우 길다. 제목의 마지막 두 글자를 따서 「입춘」이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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