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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글의 책임에 대하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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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범람시대에 그에서 비롯하는 말잔치를 보는 시각이 어느 하나로 고정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런 까닭에 순전히 개인 취향 신변잡기성 지르기를 책임없다 비난할 수는 없다. 왜? sns 탄생 배경이 그것이니깐.

다만 하나 나로선 해두고 싶은 말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미칠 파장은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근자 내 경험 하나를 들자면 내가 요새 몸이 망가졌으니 이와 관련한 신변잡기성 투덜거림 혹은 징징거림식으로 비칠 만한 포스팅을 거푸 했으니

그게 나로선 별뜻이 있을 리 있겠는가? 없다.

내 일상이 이렇다 저렇다는 날림이 싫은 나로선 고향 갈 때 이야기를 제하고선 실로 오랜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다만, 그럼에도 요 몇 년간 계속 남들은 고리타분 혹은 딱딱히 여길 만한 글들만 집중한 까닭에 잠시 변화를 주고 싶은 그런 의도도 없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그걸 본 몇 분이 쾌유를 기원한다며 선물을 보내셔서 나로선 적잖이 당황했다.

그 성의야 얼마나 고마운가?

하지만 내가 남의 연민을 샀구나 하는 그런 감정과 결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와는 분명히 다른 그 무엇한 묘한 당혹감이 들었으니

그 분들 성의에 대한 감사함과는 별개로 이젠 다시는 그런 글은 제아무리 신변잡기라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물론 결심이 그렇다 뿐이지, 앞으로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나 자신이 할 수는 없다.

또 하나, 그에 대한 보답의 표시로써 나는 무엇을 선물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지금도 하는 중이다.

저런 순전한 신변잡기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의도한 글쓰기로 문화재 관련 행사, 예컨대 특별전 정보 공유가 있다.

이건 몇 번 거듭해서 말한 듯 한데 내가 가서 직접 본 전시는 나름대로 나는 선별기준이 명확해서

가 볼 만한 전시와 그렇지 아니한 전시는 엄밀히 구분해서 전자는 대서특필하고 후자는 아예 개무시하며,

후자의 경우라도 국가기관 주체 행사는 맹렬히 비판하는 글을 쓴다. 후자의 후자의 경우 이리하는 까닭은 국민세금을 투하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실로 당돌하게도 대한민국 모든 전시는 내가 상찬한 전시와 내가 개무시한 전시 두 가지로 나누어질 뿐이라는 극언도 한다. 

여타 행사도 마찬가지라 나는 저 기준에 나름 충실하려고는 한다.

내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그 글에 감발해 그런 자리를 찾아갈 사람들이다.

난 이런 분들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비칠 내 글이 실은 언제나 두렵다.

물론 순전히 내 기준이기는 하나 내 보기엔 도저히 함량 미달인 특별전이나 다른 행사를 가 보라거나 와 보라는 식으로 사기칠 수는 없다.

내 글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하는 까닭은 지금 단계이기는 하나 그것이 옳은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비판은 줄이고 칭찬은 많이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거짓까지 애써 감싸주며 상찬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알량하지만 난 그게 내 글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물론 내가 말한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한테도 일률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네들 처지가 다 다른 까닭이다.

객설이 길었다.

아무리 신변잡기라도 내 글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보고들은 것들을 왜곡하면서까지 상찬을 일삼을 수는 없다.

그건 또 다른 사기요 죄악이다.

글이란 게 참말로 지랄 맞아서 갈수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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