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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기록이 없는 것과 역사의 실상은 다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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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본 삼국유사. 삼국유사가 없었더라면 한국고대사 상당 부분을 우리는 망각으로 돌려야 했을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다. 기록을 남긴 자의 기록이다.

 
한문학계를 진원지로 하는 조선후기론이 작금 이른바 대세를 이룬다. 이들은 영정조 시대를 르네상스에 비유하며 이 시대를 칭송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그네들이 구축한 조선후기상은 그에 대비되는 조선전기, 그리고 그에 앞서는 고려, 그에 또 앞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고려나 비교가 전연 없다.
 
 

비름빡에서 발견된 조선후기의 흔적

 
말한다.

조선후기를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그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이 여타 시대에 견주어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문집만 보자.

임란 이전 조선전기 문집으로 제대로 남은 게 몇이던가?
없다.

고작 《율곡전서》《퇴계집》정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우수마발은 문집이라 해봐야 파라냐에 뜯기고 남은 물고기만 같이 앙상하기만 하다.

기록이 많이 남은 것을 혼동한 결과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근 다른 지역 문화사와의 비교 검토가 필수다.

우리의 기록이 앙상한 그 시대, 예컨대 조선전기 이전을 같은 시대 중국, 같은 시대 일본과 비교해 봐라.

우리가 조선후기의 특질이라고 작금 논하는 사회문화현상이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중국에 있고 일본에 있지만, 우리에게 없는 것은 우리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지 우리 문화가 그리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니다.

(2014. 8. 27)
 
 

자치통감 전질

 
***

이른바 18세기 르네상스론에 대한 반발이다. 나는 그에 찬동하지 않는다.

첫째 실제 그것이 과대포장되었다고 보며

둘째 설혹 그렇다 해도 비교가 누락한 까닭이다.

18세기엔 18세기가 요구하는 문화가 꽃피웠을 뿐이니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가 다른 시대를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본문에서 언급한 《율곡전서》니 《퇴계집》만 해도 혹 임란 이후 간행이 아닌가 하는데 지금 확인하지는 않는다.
대세엔 지장이 없다. (2020. 8. 27.)

 
****
 
이는 조금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만 썩 맥락에서는 벗어나지 않다 생각하거니와 

하루 세 끼 식사를 한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기록이 없는 것과 그래서 그 시대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전연 다른 이야기다.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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