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외부인이 대규모로 유입된 시기 혹은 사건은 몇 가지 획기가 있으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으로는 다음이 있다.
1. 기원전 473년 吳國 멸망
지금의 장강 하구에 똬리를 튼 춘추시대 吳는 합려阖闾와 그의 아들 부차夫差시대에 극성을 구가하며, 천하를 호령했지만, 그 유명한 와신상담에 복수를 다짐한 월국越國 군주 구천勾践한테 멸망하고 말았으니, 이때 대규모 도망자가 발생했다.
그 협력을 거부한 오국인 상당수가 바다를 통해 도망쳤으니, 그네 중 일부는 대만으로 튀고 오키나와로 튀고, 개중 일부는 한반도에 상당수가 들어왔다.
2. 기원전 222년 월국越国 멸망
불구대천 오나라를 멸하고 병합한 월은 이를 계기로 극성을 구가하며 북쪽 제나라까지 쳐서 굴북하며 산동반도까지 진출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극강은 곧 침몰의 시작이라, 전국시대 말기에는 유력 가문 혹은 권력자들이 권력과 영토를 분할하면서 쪼개지기 시작하다
마침내 기원 222년 진 시황제한테 굴복하면서 문을 닫게 되거니와, 이 과정에서 다시 대규모 도망자가 발생했다.
오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국 또한 항해의 명수들이라, 그 도망자 상당수가 바다로 도망쳤으니, 이때 상당수 월국 도망자가 한반도로 들어왔다.
초나라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망했으니, 이런 남방 제국 멸망은 한반도 인구 유입을 가속화했다.
3. 진한 교체기
시황제가 이룩한 통일왕조는 그의 죽음과 더불어 곧바로 와해했으니, 이는 그만큼 그 통일기간에 짧은 데 따른 통합에의 반작용이라, 다시금 천하가 분열하면서 제후가 난립하니, 이 요동에 신천지를 찾아 해외로 나선 사람이 줄을 이었으니, 이때 역시 상당수 외래인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 무렵 그것을 선후해, 특히 진 시황제 시절과 한 무제 시절 발해만과 산동반도 인근 해상은 방사方士들이 활동하는 주무대라 신천지를 찾아 바다를 건너는 사람이 줄을 이었으니, 이 와중에 말할 것도 없이 대규모 인구이동이 한반도로 있었다.
4. 기원전 109~108년 한 무제의 조선 정벌
조선 자체가 중국계 도망민이 세운 왕조라, 물밀듯이 중국에서 사람이 쏟아져 요서 요동 그리고 한반도로 들어왔고, 다시 그런 정권이 한 무제에 의한 정벌이 발생할 무렵에 그 도망민은 한반도와 인근 도서 지역으로 개떼처럼 들어왔다.
저 와중에 일부는 진한 지역으로 들어와 신라를 세운다.
이것이 대략 우리가 추리는 인구이동 큰 사건이라, 비단 저들이 아니라 해도 크고작은 변동마다 적지 않은 인구이동이 있었으며, 물론 한반도에서 저쪽을 향해 넘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인구 이동에서 유념할 대목은 요서 요동을 통한 한반도 유입보다는 실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삼는 중국 강남 지역을 출발점으로 삼는 해상 유입이 훨씬 더 강대하고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다.
저 인구 이동 물결은 일본 열도까지 그대로 미치게 되는데, 일본서기에 그렇게 자주 보이는 吳는 바로 그 진원지를 장강 유역으로 삼는 중국계 유이민을 말한 것이다.
이 吳라는 글자가 지닌 심대성을 제대로 알아차린 사람이 몇 되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한반도계 가야나 백제라는 헛소리를 일삼는 일로 발전했으며, 일본 학계에서도 그런 헛소리가 지금도 넘쳐난다.
吳는 그대로 吳다. 중국계 이주민을 말한다.
그 중국계 이주민이 하필 吳로 적기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 말한 것은 기원전이며 기원후 곧 삼국시대도 인구이동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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