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미온적 보도 비판했다고…시국선언 했다고…
등록 2015-11-30 20:37
수정 2015-12-01 09:26
최원형 기자
언론사들 ‘비판 억누르기’ 해고·징계 남발
대전일보, 언론노조 지부장 해고
검찰 등 무혐의 처분에도 강행해
“4년전 일 문제 삼아 노조 탄압”
KBS·연합뉴스도 1명씩 해고 입길
MBC, 경영진 비판 기자들 재징계
언론계 곳곳에서 해고, 징계, 재징계 사례들이 늘어가고 있다. 구체적인 사안의 성격과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언론사가 내부 구성원의 불만과 비판을 권위적으로 억누르는 데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전일보>는 지난 5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15년차 사진기자인 장길문(41) 언론노조 대전일보 지부장을 해고했다. 장 지부장이 “지난 2010년부터 4년 동안 자신이 찍지 않은 사진 70여장을 본인의 이름으로 속이고 이 가운데 7장을 위·변조해 신문에 게재했다”는 것이 해고 사유다. 그러나 장 지부장은 “사실상 ‘노조 탄압’ 차원에서 이뤄진 징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지부가 상급단체인 언론노조에 가입한 뒤부터 회사가 4년 전 사진을 문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지난해 9월부터 장 지부장에게 대기 발령, 문화사업국 전배, 충주 주재기자 발령 등 여러차례 인사 조처를 내렸으나, 장 지부장은 그때마다 노동위원회, 법원 등의 판단을 받아 다시 원직으로 복직했다. 장 지부장은 “1년 동안 징계성 인사를 되풀이하다가 결국 해고했다”며 “그동안 조합원 수가 44명에서 23명으로 줄어드는 등 ‘노조 탄압’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회사에 대한 비방으로 수익사업에 손해를 입혔다’며 지난달 노조 간부들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전일보 회사 쪽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고는 노조 활동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장 지부장이 사진 도용 등 개인의 잘못을 덮기 위해 ‘노조 탄압’이라는 허위 주장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도용’에 대해 회사는 지난해 10월 장 지부장을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이 올해 8월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항고했다. 장 지부장은 “외부에서 제공받은 사진을 자신의 이름으로 쓴 사실 자체는 잘못이지만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회사가 4년 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 와서 문제 삼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KBS)은 지난 19일 26년차 경영직 직원 신기섭(55)씨를 해고했다. 신씨는 지난 7월 사내게시판에서 ‘국가정보원 해킹 사건’에 대한 자사의 미온적 보도를 비판했는데, 이 글에 담긴 욕설과 자사 보도 비방, 게시판 관리지침 위반 등이 해고 사유가 됐다. 신씨는 “자사 보도에 대한 비판은 구성원의 의무인데, 회사가 외부의 눈치를 보며 부당한 징계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욕설은 잘못한 일이나, 이미 당사자에게도 사과를 했다. 비판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조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쪽은 “재심까지 열어서 신중하게 판단했으나 ‘비위 정도가 매우 중하고 고의성이 있어서 해임 이상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방송>(MBC)에서는 ‘재징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문화방송은 지난 19일 과거 방송 총파업 때 외부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사내 게시판에 경영진 비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김혜성·김지경·이용주 등 3명의 기자에게 정직 1~3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이들은 3년 전 이미 같은 사안으로 징계를 받았고, 지난 5월 대법원은 “징계 조처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문화방송 기자협회는 “회사가 법원 판결을 도외시하고 있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반면 회사 쪽은 보도자료를 내고 “대법원이 과거 징계 처분이 지나치다고 판결했더라도 사규위반 행위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며, 기존 사건에 대한 재징계·추가징계는 법원 판례로도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20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김성진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에게 ‘감봉’ 처분을 내렸다. 연합뉴스 지부가 지난달 ‘국정교과서 반대 언론인 시국선언’에 참여한 데 대해 책임을 물은 조처다. 회사 쪽 관계자는 “시국선언에 ‘연합뉴스’란 이름으로 참여해 회사 전체가 참여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언론노조는 “조합원 개인 연서명의 시국선언 움직임에 대해 회사가 징계 가능성을 언급해 전체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했는데, 그것을 빌미로 부당 징계를 했다”며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연합뉴스는 또 문화재 전문기자였던 김태식 기자를 지난 27일 해고해 입길에 오르고 있다.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사안마다 성격이 달라 보이지만 언론사들이 예전과 달리 내부 비판에 대해 무리하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노사 문제를 넘어서 언론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언론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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